[다케스탄을 가다]한국기업 포연뚫고 통신사업 '대시'

  • 입력 2000년 12월 4일 18시 35분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85)시인이 여생을 보내길 원했던 세계적 장수촌인 러시아 카프카스지역.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자리한데다 카프카스산맥이 병풍처럼 뒤를 받치고 있어 ‘지상의 마지막 낙원’으로 꼽히던 이곳이 지금은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인해 전쟁터로 변했다.

본지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이 지난해 12월 다시 시작된 러시아군의 체첸 침공 1주년을 맞아 체첸전의 여파로 고통을 겪고 있는 카프카스지역의 러시아연방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의 현재 모습을 취재했다.》

‘아직도 총성이 울리는 분쟁 지역에 이동전화를?’

세계 굴지의 통신회사들도 외면한 러시아 카프카스지역에 한국 기업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29일 러시아 다게스탄자치공화국의 수도 마하치칼라 중심가에 위치한 다게스탄이동통신(DCN) 본사. SK텔레콤이 제공한 주파수분할(AMPS)방식의 새 시스템 개통식이 현지의 히즈리 슈이흐사이도프 총리까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SK텔레콤은 이 회사에 AMPS방식의 장비를 공급하고 설치하는 등 현물 투자로 주식 49%를 인수했다.

이 지역 이동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DCN은 그동안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했으나 현재 가입자는 겨우 1300여명. 그러나 SK텔레콤의 투자로 보다 나은 통화 품질을 보장할 수 있어 매년 100% 이상 가입자가 늘어 5년 후면 가입자가 1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곳에는 폭탄 테러와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가 잦다. 98년 카프카스지역에 이동전화를 설치하려던 영국 브리티시텔레콤 소속 기술자 4명이 납치돼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외국기업들은 대부분 철수한 상태. 납치는 이슬람원리주의 게릴라들이 국제적인 여론을 끌기 위해 주로 저지르지만 몸값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신변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

현재 다게스탄의 유일한 외국인은 ‘카레예츠’로 불리는 한국인. DCN의 아흐메드 자하로프 회장은 “한국인들은 이슬람 전사처럼 용감하다”며 놀라워 했다. 이 곳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천명의 재러동포(고려인)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살았으나 내전이 일어나면서 대부분 러시아 인근 지역으로 피난했다.

박학준 SK텔레콤 상무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1000만달러 규모에 지나지 않지만 내전이 끝나고 이 지역이 안정을 되찾을 때를 대비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프카스 지역은 현재 이동전화 보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데다 70%가 산악지형이어서 시장의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평가다.

▼인구220만 다게스탄은…▼

모스크바를 떠난 TU154여객기는 2시간 20분만에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자치공화국의 수도 마하치칼라 공항에 도착했다. 다게스탄은 남한보다 작은 5만㎢의 면적에 인구는 겨우 220만명. 이 작은 자치공화국은 지난해 러시아와 체첸자치공화국간의 내전이 다시 시작되면서 그 불똥이 튀어 지금은 카프카스지역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다게스탄이 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은 지난해 8월. 인근 체첸공화국의 이슬람원리주의 게릴라들이 다게스탄을 침공,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게릴라들은 34개 종족이 살고 있는 다게스탄 내 90만 체첸인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다게스탄 북부 부이낙스크와 카스피스크지역의 아파트들이 폭탄 테러로 잇따라 붕괴돼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12월 러시아연방군이 ‘반군 소탕’을 명분으로 다게스탄과 함께 94년에 이어 두번째로 체첸을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전에 휘말리게 됐다.

현재 다게스탄 내의 게릴라들은 대부분 체첸 남부로 쫓겨났지만 다게스탄은 여전히 게릴라전과 폭탄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러시아군의 경비가 삼엄했다. 러시아 민영 NTV의 루슬란 구사예프 카프카스지국장은 “게릴라전과 폭탄 테러가 일상적이이서 시민들은 이제 무신경해졌다”고 말했다.

다게스탄은 엄격한 이슬람공화국이지만 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 관계자들은 “아침부터 권하는 코냑이 내전보다 더 무섭다”고 농담을 했다. 다게스탄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코냑은 프랑스와 다게스탄 코냑”이라며 물처럼 코냑을 마셨다. 마하치칼라 북쪽의 키즐랴르는 옛 소련시절 세계적인 코냑 생산지로 유명하다.

다게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집에서 짜는 카펫과 서방에서 캐비아라고 불리는 ‘이크라(철갑상어알)’. 특히 이크라는 다게스탄의 주요 수입원으로 생산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당국이 카스피해 유전 개발을 기피할 정도다. 구사예프 NTV 지국장은 “체첸전이 진정되고 유전 개발이 시작되면 이 곳은 러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활기찬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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