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공군기 동해서 美항모 몰래 정찰…자존심 싸움 비화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43분


러시아군과 미군이 한국 동해상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공군기가 미 해군의 최첨단 대공감시망을 뚫고 항공모함에 접근해 사진을 찍고 귀환했다는 러시아측의 주장 때문이다. 러시아 관영 이타르타스 통신은 15일 초음속 첩보기인 SU24MR(수호이)가 지난달 17일과 이달 9일 2차례에 걸쳐 동해에서 미 7함대 소속 항모 키티호크 위를 비밀리에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아나톨리 코르누코프 러시아 공군 사령관은 “정찰비행이 특별한 임무를 띠고 계획됐다”며 “당시 미군은 우리 공군기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하다가 뒤늦게 함재기를 이륙시켰다”고 말했다. 코르누코프 사령관은 “정찰 비행에 성공한 조종사들에게 훈장을 주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즈베스티야지는 더 나아가 “전시였다면 키티호크는 완전히 파괴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군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미 7함대는 러시아 공군기의 접근을 미리 알았으며 문제의 러시아 공군기는 이륙한 미군 전폭기의 ‘보호’를 받으며 귀환했다고 반박했다. 미군은 러시아 첩보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레이더의 추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비밀 비행’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상황설명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러시아 공군기가 미 항모 위를 정찰 비행했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냉전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가 해상과 해저에서 자존심을 건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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