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어린이들 "정치인 아저씨들 싸움 좀 그만하세요"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01분


“정치인 아저씨들, 이제 그만 싸우고 제발 우리 좀 돌봐 주세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른들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어린이와 청소년들인 것 같다. 인도네시아 초중고생들이 국내 정치 불안으로 자신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국가 지도층 인사들에게 정쟁(政爭) 중단을 눈물로 호소하고 나섰다.

인도네시아 전국 16개 주에서 모인 8∼18세 사이의 초중고생 257명은 23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전국 어린이회’를 결성하고 그칠 줄 모르는 정쟁과 이에 따른 경제난 등 사회 문제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자카르타포스트가 24일 보도했다. 이 나라의 어린이날을 맞아 열린 이날 집회에는 노숙아동과 10대 매춘부, 에이즈 감염아동 등 불우아동들도 참석해 정치권에 보내는 성명서 형식의 권고문을 채택했다.

어린이들은 권고문을 통해 “정치인들이 싸움만 일삼기 때문에 경제가 나빠져 많은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 길거리나 공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정치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권고문은 이어 “정부는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고 그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32년동안 독재를 휘둘러온 수하르토 전대통령이 98년 축출된 이래 최근 수년동안 정국이 급격한 혼란에 빠진 상태. 지난해 10월 국민협의회(MPR)에서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을 선출, 34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집권 연정의 결속력이 약해 정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정국불안으로 외국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경제도 크게 악화됐다.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는 연초 미 달러당 7000루피아대에서 최근 9500루피아대로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이러다가 97년의 외환위기가 다시 닥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마저 각계 각층으로 퍼지고 있다.

‘전국 어린이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칼렙 라마이(15)는 이날 “정치인들은 이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쏘아 붙였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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