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도쿄]심규선/"기무치는 김치가 아닙니다"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01분


일본에 처음 오거나 오랜만에 다시 오는 한국인은 대부분 “언제부터 일본에서 한국 음식이 이처럼 유행하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쉽게 한국 음식을 선전하는 광고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무치(김치) 비빈바(비빔밥) 굿파(국밥) 가르비(갈비) 레이멘(냉면) 등등. 편의점에서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파는 한국 음식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한국 음식 가운데 가장 많은 광고를 타는 것은 역시 김치 관련 상품이다. 김치 컵라면과 김치찌개, 김치맛 소스 등이 나와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김치 자체를 선전하는 광고는 없다. 이미 일본 사회에서 김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치 컵라면 등은 김치의 인기에 착안한 파생상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김치’는 ‘김치’가 아니다. ‘기무치’로 불린다. 발음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무치’로 불리면서 ‘일본식품’이 된 것이다. 김치의 가장 큰 특징은 숙성과 발효과정을 거쳐야만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만드는 ‘기무치’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생략한다. 김치 시늉만 낸 것이 김치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제조과정이야 어떻든 일본인의 입맛에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산 정통김치는 일본산 ‘기무치’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30초짜리 광고를 만들어 6일부터 6개월간 일본의 주요 TV에 내보내기로 했다. 광고에는 퍼포먼스 그룹 ‘난타’가 김장독을 두드리는 광경을 배경으로 ‘진짜 김치란 무엇인가’ ‘확실한 발효와 확실한 숙성을 거친다’ ‘이것이 본바닥의 실력’이라는 등의 코멘트가 들어 있다.

공사는 한국산 김치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TV광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일본 내 김치생산량은 25만900여t(절임식품의 22.1%)으로 한국에서 수입한 2만3800여t의 10배가 넘는다. 점유율로 보면 한국산은 8.7%에 불과하다.

이번 광고는 또 김치의 국적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하나이기도 하다. 김치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키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치가 국제화되면 그만이지 국적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김치가 더욱 국제화돼서 다른 나라에서도 소비가 늘어날 때 일본산 ‘기무치’가 한국산 ‘김치’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제 것조차 못 찾는 것이 국제화는 아닐 것이다.

<심규선특파원>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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