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개월 최장기 호황의 그늘]미국인들 "풍요속의 불행"

  • 입력 2000년 5월 21일 19시 44분


인류역사상 가장 강성한 나라가 요즘의 미국일 것이다.

군사 외교면에서 맞설 나라가 없는 초강대국인데다 경제적으로는 110개월째 최장기 호황을 즐기고 있다. 범죄 낙태 이혼 자살률은 90년대 이후 감소 추세이며 고교생의 대학진학적성검사(SAT) 성적은 상승 국면에 있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은 부러울 게 없는 사람 같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전보다 생활이 나아져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드햄대의 마크 미린고프 교수(사회학)는 사회적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유아사망 범죄 보건 등 16개 항목에 관한 통계를 종합해 사회보건지수(최고치 100)란 개념을 도입했다. 미린고프교수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73년 사회보건지수는 77이었으나 1993년엔 38로 떨어졌다. 73년과 96년을 비교할 때 상위 20%의 평균소득은 8만6000달러에서 12만5000달러로 증가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1만1640달러에서 1만1388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빈부격차가 과거보다 훨씬 커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20년 전에 비해 생활여건이나 만족도가 더 떨어졌음을 뜻한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0일 “이같은 결과는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는 중도좌파와 도덕문제를 우려하는 보수층 등 연구집단의 차이와는 별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미국 사회가 과거보다 나빠졌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과 무관치 않다.

타임스는 이 때문에 학계와 많은 주(州) 시 카운티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주요 경제지표처럼 사회 현상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령 환경분야의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서 특정지역의 새와 개구리의 수를 파악하며 주민이 느끼는 안전도를 측정하기 위해 행인의 수를 세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영국 일본 노르웨이 등은 사회적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연례 사회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나 미국에는 그런 보고서가 없다. 1967년 민주당 월터 먼데일 상원의원이 관련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국민의 기본적인 경제적 요구가 어느 정도 충족된 상황에서 행복에 관한 다양한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적 지표를 만들어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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