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모리총리 '神의 나라' 사과…"발언자체는 취소안한다"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총리는 17일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라고 했던 15일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모리총리는 이날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헌법의 주권재민과 신앙의 자유를 준수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발언내용에 대해 오해가 생겼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천황이 신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아니다”며 “천황은 일본과 일본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존재하며 주권재민의 원리와 모순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모리 총리가 서둘러 사과한 것은 다음 달 있을 총선에 대비해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내각의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총선을 의식한 제스처로 보인다.

모리총리는 이번 발언 후 연립여당 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가와라 쓰토무(瓦力)방위청장관은 “총리의 발언은 이웃 국가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연립파트너인 공명당의 큰 반발은 사과하기로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천황을 중시하는 ‘신도(神道)정치’를 거부해온 공명당은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관방장관에게 사태를 빨리 수습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총선을 의식한 자민당 내 인사들은 “총리가 한마디 할 때마다 표가 달아난다”며 총리의 경솔함을 탓했다.

야당에는 총선을 앞두고 아주 좋은 재료가 생긴 셈. 야당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가 갑자기 타계해 여당에 동정표가 몰릴 것을 걱정해왔다. 그러던 차에 모리총리의 실언이 터져 나오자 “현 내각은 국정능력과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공격의 고삐를 잡았다.

모리총리가 비록 사과는 했지만 발언자체를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아직 불씨는 남아 있다. 이번 발언은 순간의 실수라기보다는 모리총리가 전부터 갖고 있던 국가관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리총리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 이런 소동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 공산 자유 사민당 등 일본의 4개 야당은 이날 오후 간사장회의를 열어 내각사퇴를 요구하기로 합의하는 등 공세를 거듭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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