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부치 前총리는 누구]격무에 쓰러진 불운의 정치인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전 총리(62)의 어법대로 말하자면 하늘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14일 타계한 오부치 전 총리는 흔히 ‘기다림의 정치가’로 불려왔다. 오랜 세월을 기다려 총리에 선출된 지 불과 1년 8개월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늘이 정한다.”

같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파벌에 속하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가 총리가 됐을 때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그는 26세의 와세다(早稻田) 대학원생이던 63년 국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11선 의원으로 자민당 간사장과 부총재 관방장관 외무장관 등을 거쳤다. 당연히 총리감으로 꼽혔지만 늘 총리에서 탈락했고 그때마다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참고 기다리는 정치가는 화려하지 않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총리에 취임한 98년 7월 경기침체에 빠져있던 일본은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했다. 그런터에 오부치가 총리에 오르자 일본 언론계와 정계에서는 ‘불과 사흘 밖에 못갈 것’이란 험담마저 나왔다. ‘식은 피자’라는 별명은 취임후 계속 따라다녔다. 그는 타고난 성실성으로 이런 분위기를 뒤집었다. 면담과 회의 일정이 하루에 20∼30건에 달할 정도. 그래서 얻어진 별명이 소처럼 우직하게 일한다는 뜻의 ‘둔우(鈍牛)’. ‘식은 피자’ 이미지는 서서히 사라졌다. 면담 일정 틈틈이 각계 각층 인사에게 수시로 깜짝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하거나 민심을 파악, ‘오부치폰’이란 유행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취임 당시 25%에 불과했던 지지율은 지난해에는 50%를 넘어섰다.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함에 따라 경제회생책 등 현안을 뜻대로 풀어나갈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무렵 갑자기 쓰러졌다. 심장병을 갖고 있던 그에게 격무는 치명적이었다.

운이 다했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그는 쓰러지기 직전 야당 당수와의 회동에서 “나는 운이 나쁘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인에게 오부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의기투합해 한일관계를 개선한 지한파, 친한파 인사로 꼽힌다. 98년 8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있는 원폭 피해 한국인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재임중 히노마루(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정한 법이 통과됐다. 그의 바탕은 우파 정치인이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오부치 前총리 관련일지▼

△1998. 7.30 제84대 총리에 취임. 오부치내각 발족.

△8. 7 소신표명 연설서 ‘경제회생 내각’ 선언

△10.12 금융재생관련법 성립

△1999. 1.14 자민당 자유당 연립 내각 발족

△3.24 북한 선박 영해침범, 첫 해상경비행동 발령

△4.29 G8 정상회담 오키나와 개최 결정

△5.24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 성립

△8. 9 국기국가법 성립

△9.21 자민당 총재에 재선됨

△9.30 도카이무라에서 핵사고 발생

△10. 5 자자공 연립내각 발족

△2000. 2. 2 중의원 정원감축법 성립

△3.31 홋카이도 우스산 분화

△4. 1 자유당 연립정권 이탈의사 표명

△4. 2 오부치총리, 뇌경색으로 긴급 입원

△4. 3 아오키 미키오 관방장관, 총리임시대리 취임

△4. 5 모리 요시로내각 발족

△4.14 오부치 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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