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사건]美軍 데일리증언 眞僞논란 확산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6·25전쟁 초기에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가 11일 이 사건 핵심증인인 에드워드 데일리 등 미군 2명이 실제로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12일 특집기사를 통해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도 13일 이 사건에 관한 논란을 크게 다뤘다.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특히 육군인사기록과 전황일지 등을 토대로 데일리가 미군 1기갑사단 7연대 2대대 H중대의 기관총 사수로 1950년 7월26일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현장에 있었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데일리는 1949년 3월18일부터 1951년 3월16일까지 27병기정비부대의 정비병으로 복무했다”며 “그가 H중대에서 근무한 것은 노근리 사건 8개월 뒤인 1951년3월16일부터 54일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데일리는 이 잡지와의 회견에서 “내 기억으로는 나는 노근리에 있었으며 내가 저질렀다고 말한 일을 했다”며 “나는 재향군인관리국에서 몇 년간 치료를 받아왔으며 한국에서의 악몽으로 인해 하루에 독한 정신질환치료제를 3알씩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웨스트포인트 역사교관인 로버트 베이트먼의 말을 인용해 데일리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데일리의 전우인 돈 다운은 “데일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현장에 없었다고 하면 노근리사건도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군사기록은 정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고 포스트는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육군은 이미 노근리에서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당시 상관의 학살지시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데 진상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군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건의 고의성 여부”라고 보도했다.

한편 주미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 피해자들이 이 사건에 관한 보상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뒤 미국측 증인들이 변호사가 없으면 증언하지 않겠다고 말하거나 말을 바꾸는 경향이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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