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잇단 민족차별 발언…日언론 지식인 "부끄럽다"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67) 일본 도쿄(東京)도지사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9일 ‘3국인 소요 가능설’ 발언에 대한 한국 중국 등 관련국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2일에는 ‘중국 소국가 해체론’을 주장한 인터뷰 기사가 공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시하라의 ‘3국인 소요 가능설’ 발언 이후 11일까지 사흘간 도쿄도청에 쇄도한 전화 팩스 E메일 1028건 가운데 ‘지지한다’가 60.9%로 ‘반대한다’ 35.8%를 훨씬 앞질렀다. 양식 있는 일본 지식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은 이시하라의 ‘문제발언’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

이시하라는 12일 발간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일본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면서 “일본은 중국을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분열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대만과 통일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은 무력 사용을 포기한 헌법 9조를 개정해 재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시하라의 계속된 헛소리는 일본 우익 정치인의 반동적인 성격을 충분히 밖으로 노출시켰다”며 “세계 각국 인민들의 강렬한 반대를 부를 것”이라고 비난했다. 쑨위시(孫玉璽)외교부대변인은 이시하라의 3국인 발언에 대해 서도 “허튼 소리”라고 일축하고 “일본 내 양식 있는 인사들조차 이같은 망동을 수치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하라의 ‘3국인 소요 가능설’ 발언 파문도 그가 12일 해명 기자회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3국인은 재일한국인 등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며 앞으로는 3국인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일본에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이나 파키스탄인들이 마약을 파는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자 아사히신문은 13일 사설에서 “제3국인이라는 단어는 제2차세계대전 후 구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출신자를 가리킨 말”이라며 “이시하라 지사가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도지사란 자리는 기분 내키는 대로 정치신조를 표현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이시하라의 경솔한 발언을 비판했다.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도 이시하라의 발언을 외국인보다 일본인이 먼저 문제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이시하라의 국수주의적 발언은 일본이 ‘문화대국’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자성의 소리도 있다.

오에 시노부(大江志乃夫)이바라키대 명예교수는 13일 “이시하라의 발언에는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차별의식이 보인다”며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수도행정을 맡아 자위대 출동 요구권까지 갖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12일 도쿄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인 전일본 대학생자치회 총연합회도 유인물을 통해 “이시하라의 발언은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때 군경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일을 연상시킨다”며 비난했다.

<도쿄·베이징〓심규선·이종환특파원>ksshim@donga.com

▼이시하라 누구인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도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의 보수논객이다. 그는 히도쓰바시(一橋)대학 재학중이던 1956년 소설 ‘태양의 계절’을 써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는 등 일찌감치 주목을 끌었다.

고도성장시대 초기 젊은이들의 반항심리를 그린 이 소설은 ‘태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옆머리는 짧게 깎고 앞머리는 약간 길게 한 그의 헤어스타일까지 ‘신타로 가리’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

이시하라는 1968년 일본의 체제 개혁을 호소하며 참의원 전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득표율 전국 1위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4년뒤 중의원으로 옮겨 내리 8선을 하며 환경청장관 운수상을 지냈다. 정계입문 만25년여인1995년 중의원을 사직했다.

그는 1989년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99년 작고)소니회장과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써 또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실패도 있었다. 1975년 도쿄도지사선거와 1989년의 자민당총재선거. 그러나 그는 언제나 ‘강한 일본’을 주창하는 매파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해 4월 도쿄도지사에 다시 도전, 당선됐다. 전설적가수이자 배우였던 고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郞)가 동생이며 아들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는 현재 중의원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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