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권교체]'휠체어 퍼스트레이디' 우수전 여사

  • 입력 2000년 3월 19일 23시 27분


18일 밤 대만 타이베이(臺北) 시내에서 열린 천수이볜(陳水扁)후보 당선 축하행사장에서 부인 우수전(吳淑珍·48)여사는 줄곳 담담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20만명의 인파가 자신을 열광적으로 환영할 때 잠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을 뿐 생애 가장 행복한 날에도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남편과 부총통 당선자인 뤼슈롄(呂秀蓮)이 손을 잡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군중의 환호에 답할 때 누군가 뒷줄에 있는 우여사의 휠체어를 남편 옆으로 밀려고 하자 그녀는 “괜찮다”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우여사가 천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 타이난(臺南) 마터우(麻豆)의 쩡원(曾文)중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것. 당시 천은 우에 대해 “예쁘게 생긴 부잣집 딸”로, 우는 천을 “공부를 잘하는 남학생”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사랑위해 집 뛰쳐나와▼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한참 뒤였다. 우는 중싱(中興)대에 입학한 직후 중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우연히 천을 다시 만나게 된 것.

천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된 우에게 한눈에 반했다. 우도 어딘지 촌스럽긴 했지만 천의 성실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곧 반대에 부딪쳤다. 의사였던 우의 아버지는 가난한 수재에게 딸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우는 집을 나왔다. 안락한 삶을 포기한 채 사랑 하나만을 믿고 1975년 결혼했다. 아들 딸도 하나씩 태어났다. 1979년 험난한 정치판에 뛰어든 남편이 걱정됐지만 결혼후 10년간은 그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1985년 11월 18일 타이난에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돕던 우는 갑작스럽게 달려든 트럭에 치여 두 다리가 마비됐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교통사고 정치테러 의혹▼

아내의 교통사고를 자신에 대한 정치 테러라고 여겼던 천은 병원에서 “나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됐다. 나를 만난 것을 원망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때 우는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이 정치를 하는 동안 누군가 한사람이 꼭 희생되어야 한다면 당신보다는 내가 당하는 것이 낫다.”

이들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대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천은 매일 밤 두 번씩 깬다. 아내를 안고 화장실에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이번 선거에서 우는 다른 후보 부인들이 시장을 누비며 맹렬히 유세를 할 때도 그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우는 남편의 선거운동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지난달 회고록 ‘走出金枝玉葉(금지옥엽에서 벗어나)’을 펴냈다.

이 책에서 우는 남편의 가정적인 모습과 선명한 야당투사의 이미지를 집중 부각해 천이 여성표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타이베이〓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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