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나치풍 술집' 외교문제 비화…유태인 인권단체등 항의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의 대형 사진이 벽에 걸려 있고 붉은 나치 깃발과 철십자가 곳곳에 장식돼 있다. 검은색 나치 독일군 제복을 입은 남녀 종업원이 술과 안주를 나르는 사이로 젊은이들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술집 이름도 히틀러가 세웠던 ‘제3제국’.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한 서유럽지역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역에서 한국인 주인이 한국 젊은이들을 겨냥해 지난해 문을 연 술집의 모습이다. 이 술집의 존재가 외교문제를 촉발하고 있다.

전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은 7일 “지난달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국제유대인 인권단체인 ‘시몬 위젠탈’센터는 이홍구(李洪九)주미대사에게 ‘제3제국’이 폐쇄돼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단체는 “히틀러의 나치독일을 숭배하는 듯한 이 술집이 나치독일에 목숨을 잃은 수백만 유대인의 상처를 되살아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주한이스라엘 대사관도 최근 외교통상부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 술집은 연세대 등 신촌 인근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연히 들렀다가 나치일색인 실내 장식을 문제삼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대인 단체에도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한다.

AP통신은 주인 현모씨와 술집을 찾은 젊은 손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들이 나치 독일의 만행에 고통받은 유대인의 과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업소의 주인 현씨는 “순수한 장사목적이며 눈에 띄는 장식으로 손님을 끌면 그만”이라며 “히틀러가 누구인지 관심없다”고 말했다. 히틀러에 대해서도 ‘예전에 유대인을 좀 죽였던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현재 한국정부는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으며 술집 주인 현씨는 ‘외국인 고객 사절’로 문제 확대를 막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한편 관할 서대문구청측은 최근 ‘제3제국’을 두차례 방문해 외교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으니 실내장식을 고쳐달라고 요청했으며 주인 현씨는 히틀러 사진과 나치장식을 일부 떼어내겠다고 밝혔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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