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IMF 총재' 자리싸고 갈등…코흐베저 "거부""적임"

  • 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28분


국제 기구의 장을 선출하는 문제로 국제사회가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조화와 합의’를 존중하는 국제 관행을 무시한 채 자국의 이해만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국제금융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셸 캉드쉬 전 총재의 사퇴이후 후임 인선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립으로 표류하고 있다.

IMF총재직은 유럽 출신이 맡는 것이 국제 관행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IMF총재직에 도전한 독일의 카이오 코흐베저 재무차관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경륜이 부족하고 거시경제에 대한 안목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독일측은 “미국이 ‘누가 총재직에 적합하느냐’는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미카엘 슈타이너 독일 총리 안보보좌관)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당초 코흐베저 차관을 지지하기를 망설였던 프랑스와 영국도 ‘미국 대 EU의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되자 그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 결과 2일 코흐베저 차관, 스탠리 피셔 IMF수석부총재, 일본의 사카기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차관 등 3명의 총재 후보를 놓고 24개 집행이사국이 실시한 비공개 모의투표에서 코흐베저 차관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피셔 수석부총재. 하지만 기권이 36%나 돼 실제 투표에서도 코흐베저 차관이 1위를 차지할지는 의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날 “독일이 국제기구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를 바라나 IMF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만큼 가급적 강력한 인물이 총재를 맡기를 원한다”며 유럽에 후보를 교체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의 사무총장을 놓고서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가 대립했다. 오랜 진통 끝에 6년 임기를 3년씩 나누어 두 사람이 맡는 기묘한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미국이 밀었던 마이크 무어 전 뉴질랜드 총리가 전반기 3년을, 아시아 국가가 밀었던 수파차이 파닛차팍 태국 부총리가 하반기 3년을 맡게 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인 도널드 존스턴 전 캐나다 법무장관은 95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총장직에 선출됐다.

그러나 OECD 총장직을 유럽 몫으로 간주해온 EU가 강력히 반발해 5년임기 중 전반기 18개월을 프랑스인 전임 총장이 계속 맡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처럼 국제기구의 장을 둘러싸고 미국과 다른 진영이 힘겨루기 끝에 변칙적 합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되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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