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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6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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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보낸 장비는 한대도 없어요. 보루산, 추크로바, 제일란 등 대형 건설회사들이 보낸 중장비와 기사들뿐이죠.”(이브라힘 모압·45·건축사)
최대피해지역 중 하나인 이즈미트시(市)가 집계한 동원 중장비는 모두 80여대. 이즈미트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90% 이상이 3대 건설회사가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또다른 지진피해지역인 이즈미트 시청앞 광장. 슈퍼마켓 체인인 ‘미그로스’ 로고가 그려진 트럭 6대가 멈춰섰다. 터키 적십자사인 ‘붉은초승달’ 소속 직원들이 트럭에서 빵 음료 치즈 올리브 등을 익숙한 솜씨로 실어냈다.
“미그로스는 20일째 지진피해를 본 8개 도시에 하루 두차례씩 5,6대 분량의 식료품을 무상 제공했어요.” 이즈미트시 닐균공보관(32·여)은 “이즈미트 사람치고 미그로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만난 이재민들이나 현지 언론은 모두 민간기업의 헌신적 지원을 한목소리로 평가했다. 정부가 못하는 재난복구 기능을 민간기업과 시민들이 메워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내 은행과 국영 TRT방송은 성금과 구호품 모으기 캠페인을 주도해 직장인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시민들이 이 성금마련에 동참했다. 3일 현재까지 성금을 내거나 식료품 헌옷가지 냄비와 그릇 등을 싸들고 방송국으로 달려온 시민은 모두 39만여명.
그러나 민간인들이 정부의 ‘빈 자리’를 다 메우기란 애당초 어려운 일. 골주크 등 일부 지진피해지역에서는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맨손으로 돌더미와 건설자재를 들어나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단체를 한번도 결성해 보지 않은 나라, 지진피해를 보아도 온 국민이 복구에 동참해 보지 않은 나라, 종교적 체념이 체질이 된 나라. 그러나 터키 국민은 특유의 끈기와 놀라울 정도의 차분함으로 재해를 소리없이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스탄불(터키)〓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