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돕기]6·25 상이용사 "터키 지진고아 입양 신청"

  • 입력 1999년 8월 31일 18시 59분


지진으로 무너진 돌더미 아래에서 한 어린이가 발굴되는 광경이 TV에서 보도되는 순간 그는 눈을 감았다. “하느님, 저 어린 목숨을 살려주세요.”

6·25 참전 상이용사인 강상숙(康尙淑·71·경기 안산시 월피동)씨. 그는 터키 지진참사로 고아가 된 어린이 2명을 입양해 키우겠다며 최근 주한터키대사관에 신청서를 냈다.

그의 ‘입양 결심’의 배경에는 6·25전쟁 당시의 아픈 기억이 깔려 있다. 51년초 11사단 중화기소대 소대장(중위)이었던 그는 원산 부근의 터키군 바로 옆에서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의 파상공세는 무서웠습니다. 미군을 비롯한 다른 유엔군이 다들 후퇴했지만 끝까지 국군을 곁에서 지켜준 것은 터키군뿐이었습니다.”

강씨는 그때 부상한 열여덟살짜리 연락병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거둬야 했다. “김두욱이라는 학도병이 후퇴중 배에 총상을 입고 저에게 애원하는 거예요. 중공군에 잡혀 죽느니 차라리 제 손에 죽겠다고….”

강씨는 그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자신의 권총으로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다. “정말 미안하다. 용서해다오”라는 말과 함께.

오른손과 얼굴에 총상을 입고 예편한 강씨는 지금도 당시의 그 얘기를 할 때면 오열을 참지 못한다. “TV에서 본 터키 어린이의 애처로운 눈빛에서 김일병의 앳된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솟아나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죠.”

강씨의 입양 얘기에 가족들도 동의했다. 전역 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일본 미국에서 일문학과 교육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씨는 고교교사 대학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터키 고아의 입양은 목숨걸고 우리를 도운 전우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가 죽더라도 제 자식들이 그들을 돌볼 겁니다.”

강씨의 말에 터키대사관 직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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