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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4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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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톈안문 광장은 국기게양식을 위한 군인들의 착검 행진으로 아침을 열었다. 10년 전 광장을 메웠던 탱크와 군인 대신 광장 보수 공사에 동원된 착암기와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광장 근처에서는 한 중년 남자가 ‘학생운동을 기억하라’는 구호가 적힌 우산을 펴고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아래의 다리를 건너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학기말시험에 매달리며 사태 10주년에 거의 무관심한 모습. 대학이 밀집한 하이뎬(海淀)구 거리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학생들이 교내에 머문 탓인지 평소보다 한산.
○ …사태 희생자의 일부 유족들은 사복경찰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묘지를 찾아가 꽃다발을 바치며 추모식을 가졌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경찰이 반체제인사들과 유족을 자택 또는 당국에 연금해 상당수 유족은 집안에서 추모식을 했다고 보도.
○…중국 언론매체들은 톈안문사태에 관해서는 일절 침묵.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톈안문사태에 대한 서방언론의 관심을 “저널리즘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정치행위”라고 비난.
〈베이징〓이종환특파원·외신종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