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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25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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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소련 붕괴후 서방 극장과 관현악단들의 윙크에도 눈한번 깜짝하지 않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극장 음악감독을 맡아 예전의 확고한 명성을 찾아준 인물. 필립스사에서 내놓는 음반들도 ‘인기없는’ 러시아 오페라를 포함,전부 모국 작곡가의 작품뿐이다.
그런 그이기에 외국 악단과 그것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으로는 가장 ‘독일적’인 교향곡으로 분류되는 작품을 연주한 일은 사건에 가깝다. 신년음악회로 우리에게 익숙한 빈 필하모니. 은회색 비단같은 현악을 자랑하는 악단이다. ‘코사크 기병’같이 생긴 러시아인의 지휘봉 아래 어떤 연주를 펼쳤을까.
결과는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현악부에는 활에 송진을 잔뜩 묻힌 듯 끈끈한 찰기가 느껴지고, 금관악기들은 평소의 중후한 표정 대신 한껏 뜨거움을 머금는다.
“이건 레닌그라드 필(소련시절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과 다름없다!” 듣는 사람이 외마디 비명을 질러도 상관 없다. 물감을 넓게 펴바르는 듯한 빈 필 특유의 표정은 사라져 아예 없다.
“키로프 오케스트라와의 차이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오직 세계 최고기량의 악단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 뿐.” 연주 뒤 게르기예프의 회상.
빈 필은 악단 고유의 색채를 양보하며 게르기예프의 지휘봉에 최고의 반응을 보여주었고, 뜨거운 열정과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균형미를 살린 명연주가 결과로 남았다. 98년 7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축제극장에서의 공개연주 실황녹음. 02―3408―8031(유니버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