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면책특권 인정]『국익 우선』실리외교 승리

  • 입력 1998년 10월 29일 19시 25분


‘국익 앞에서는 윤리외교는 뒷전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영국 런던고등법원은 28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독재자(82)에게 외교관 면책특권을 인정해 ‘그를 구금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자 국제사회에서는 영국 법원이 칠레와의 관계를 고려한 ‘외교적 판단’에 따라 피노체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윤리외교’가 국익 앞에서 물러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머스 빙엄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한 주권국가가 그 주권행사와 관련해 다른 국가를 공박하지 않는다”며 “피노체트가 칠레의 전 통치권자로서 재임중의 통치행위에 대해 영국에서 민형사상 소추를 당하지 않을 면책특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피노체트는 검찰의 항소방침에 따라 계속 구금중에 있으나 피노체트가 보석신청을 했기 때문에 이르면 30일 풀려날 가능성도 있다.

검찰측이 항소할 경우 이르면 다음 주 중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원에서 최종적으로 석방여부가 결정된다. 영국에서는 최종심을 상원의원 1천여명 가운데 일정 수의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다룬다.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은 재임기간 중 반(反)인륜범죄를 저지른 외국의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피노체트에 대한 구금영장 집행 과정과 혐의에 대한 증거여부 등 세부적인 내용은 따지지 않고 면책특권을 인정해 다른 사법절차를 제기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이유.

상원이 고법의 판결대로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인정할 경우 피노체트를 넘겨달라는 스페인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요청도 무의미해진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날 “영국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아돌프 히틀러나 폴 포트가 살아 있어도 영원히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나아가 2000년 개설되는 반인류범죄처벌을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제기능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피노체트는 허리 디스크수술을 위해 영국에 갔다가 16일 스페인 사법당국의 요청에 따라 영국 경찰에 의해 전격 구금됐다.

〈윤희상기자·런던외신종합연합〉he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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