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동질성신화가 통일 걸림돌』…美 그링커교수

  • 입력 1998년 6월 8일 19시 57분


“한민족의 동질성 신화는 통일을 막는 장애물이다.”

미국의 한 인류학자가 한국의 통일론과 통일정책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한 저서를 출간, 화제가 되고 있다. 조지 워싱턴대 인류학과 로이 리처드 그링커교수는 ‘한국의 장래―통일과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한국 통일론의 최대 문제점은 정부나 학자를 막론하고 한민족 동질성의 신화에 빠져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민족이 자랑하는 민족 동질성이 오히려 통일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주장.

그링커교수는 한국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정권만 없어지면 북한 주민들이 분단 이전 한민족으로 돌아가 사회적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남북한 모두 분단 이후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겪어 그같은 자연스러운 통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기대가 은연중 한국의 헤게모니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북한 주민에게 한국식 삶의 방식을 강요함으로써 통일이후 사회적 통일과정은 오히려 더 큰 내부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링커교수는 특히 한국에서는 이질성(Otherness)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을 정도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단일민족문화가 지배하고 있어 정치적 통일 후 북한의 이질성을 수용할 준비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북한에서 넘어온 귀순자들에 대한 한국의 배타적 태도를 들었다. 귀순자들의 적응과정은 앞으로 일어날 북한주민의 사회적 통합을 진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귀순자들을 통해 북한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적응과정을 제대로 지원하거나 유심히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링커교수는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했을 당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귀순자들이 한명도 없을 것이라는 한 귀순자의 말을 인용,한국은 북한주민들이 북한정권에 세뇌당하고 있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같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96년 기준 5백6명의 북한 귀순자 중 2백2명 이상이 직업이 없는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하고 있어 향후 북한주민들과의 사회적 통합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홍구(李洪九)주미대사는 그링커교수의 저서에 대한 서평에서 “독일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통일한국을 건설하는 데 매우 독창적인 처방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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