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들은 역대 세계 지도자중 최악의 성추문에 휘말린 빌 클린턴대통령의 비극을 그의 출신배경과 성장환경 및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과정에서 형성된 편집적 성격 등에서 찾기 시작했다.
87년 유력한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게리 하트가 혼외정사로 발목을 잡혀 경선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은 즉각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가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베시 라이트 보좌관은 그가 정사를 나눴을 법한 여성들의 명단을 작성, 그와 함께 누가 나중에 문제거리가 될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두차례 명단을 훑어본 클린턴은 경선포기로 돌아섰다.
물론 이전부터 참모들은 수차례 그에게 경선포기를 종용했지만 클린턴은 자신의 눈으로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히 명단을 보기 전까지는 하트를 좌초시켰던 문제가 자신에게는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의 출마를 종용한 것은 부인 힐러리였다.
이 일화는 이미 숱한 성추문에 시달려온 클린턴이 전 백악관 임시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새로운 스캔들을 벌여 결국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자초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25일 클린턴의 전기 작가 데이비드 매러니스기자의 기고를 통해 클린턴의 성장배경과 성격을 해부했다.
그에 따르면 클린턴에게 섹스 스캔들의 역사는 정확히 그의 정치인생과 일치한다. 아칸소대 법학교수로 74년 하원의원선거에 첫 출마했을 때부터 클린턴은 총각이었음에도 지나치게 많은 여자들과의 교제로 문제가 됐다. 그가 선거 사무실 뒷문으로 아가씨들을 내보낼 때 1년 뒤 결혼하게 될 힐러리가 정문으로 막 들어오는 장면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도 염문은 끊이지 않았고 젊고 매력적인 주지사에 대한 여성들의 ‘육탄공세’는 한층 거세졌다.
그는 ‘민정사찰’을 이유로 술집에 들러 젊은 여성들과 어울리곤 했다. 그는 심지어 조깅할 때조차도 보좌관을 따돌리고 몇시간씩 사라져 바람을 피우곤 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도’에도 불구, 그는 용하게도 섹스 스캔들 때문에 치명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클린턴은 4세때 알코올중독자인 로저 클린턴을 계부로 맞았다. 그의 어머니 버지니아에게는 네번째 결혼이었다. 불우한 성장기 내내 클린턴은 현실을 지워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친구들에게는 절대 자기집 얘기를 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최면을 걸었다.
클린턴은 아칸소주의 유흥지였던 핫 스프링스에서 살았다. 남부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박장들이 침례교회 옆에 즐비하게 늘어섰다. 죄와 선이 공존하는 모순의 도시는 어린 클린턴의 성격에 ‘이중성’의 깊은 골을 각인했다. ‘정직’은 그곳에서 결코 환영받는 덕목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클린턴은 어릴 때부터 모순되는 것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키웠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줄 알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는 낙관적 기질도 배웠고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특성도 자라났다. 그것이 여성에게는 성적(性的)으로, 정치적으로는 더 많은 표를 요구하는 야망으로 나타났다.
브라이언 도일 조지타운대 교수는 “성적충동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때로 매우 비극적인 상황판단을 할 수 있다”며 “이들은 부엌싱크대는 오물로 뒤덮여 있는데도 화장실에서 자신의 손만 여러 시간 씻는 것 같은 양태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실제 80년대 중반 이복동생인 로저가 마약중독으로 수감됐을 때 친구들에게 “우리는 모두 뭔가에 중독돼 있다. 누구는 마약에, 누구는 권력에, 누구는 섹스에…”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의 계부뿐 아니라 동생 어머니 할머니까지도 모두 중독자였을 만큼 집안 전체가 중독증세와 관련이 깊었다.
중독에 가까운 그의 과도한 집착이 권력의 세계에서는 불굴의 투지로 작용, 민주당 출신으로는 60년만의 첫 연임대통령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 집착은 이제 그를 현직에서 물러나는 역사상 두번째 대통령으로 전락시킬지도 모를 화근이 되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