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97]테레사수녀/궁핍한 시대 빈자의 성녀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빈자(貧者)의 성녀(聖女)」로 온 세계의 추앙을 받아오던 마더 테레사 수녀. 그의 웅크린 몸가짐, 주름진 얼굴, 기도하는 모습은 사랑과 평화 그 자체였다. 9월6일 테레사수녀(87)의 임종 소식을 들은 지구촌은 이념과 인종, 종교를 떠나 한마음으로 「세계는 사랑과 열정과 빛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신(神)마저도 외면해버린 듯한 캘커타의 악명높은 빈민굴. 교황청의 보호도 없이 혈혈단신 이곳에 뛰어든 30대의 수녀가 반세기 동안 일궈낸 「사랑의 기적」에 세계가 경의를 표한 것이다. 나환자나 에이즈환자, 힌두교도나 고아, 버림받은 노인이 그에게는 모두 똑같은 「예수」였다. 테레사수녀는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만원버스나 전차를 타고 다녔고 버림받은 사람의 곁을 지켰다. 그는 하루 4시간의 수면과 기도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환자를 수발하는 데 바쳤다. 말년에 그를 괴롭힌 폐질환도 평생을 구부린 자세로 병약자를 돌봐온 봉사활동 때문인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이다. 노령에 따른 건강악화로 지난해부터 자주 병원 신세를 져온 테레사수녀는 입원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죽게 해달라』며 의사들에게 퇴원을 간청했다. 사망 당시 그가 지녔던 것이라고는 낡은 무명 사리 두벌과 샌들 한 켤레뿐이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은 놀라운 선물이며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는 평소 이렇게 강조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1910년 알바니아에서 출생한 그는 18세에 더블린의 마리아수녀회에 가입, 수녀로서 첫발을 들여놓는다. 그후 인도로 파견돼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라」는 부르심을 듣는다. 38세이던 1948년 단돈 5루피(한화 1백20원)로 캘커타의 폐사원 한구석을 빌려 고아 나환자 무의탁노인을 불러모으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사랑의 선교회」였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많은 이들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세상을 하직했다. 테레사수녀는 이러한 공로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나환자의 상처를 씻을 때 그리스도를 돌보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희생과 봉사를 통해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 그의 삶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말년에 질환으로 고통받던 테레사수녀의 일화 하나. 그가 꿈속에서 천국에 갔을 때 성 베드로가 말했다. 『지상으로 돌아가거라. 이곳에는 빈민굴이 없느니라』고.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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