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 본회담의 의제채택문제를 다룬 2차예비회담이 결렬됨으로써 4자회담의 성사전망은 불투명해 졌다. 북한측은 한미 양국이 수용할 수 없는 주한미군문제와 북―미(北―美) 평화협정체결문제를 의제로 고집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는 「변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까지 선언했다. 그러면서 「협박성 식량지원」을 거듭 요구했다. 미국측이 이틀째 회담에서 북한을 달래기 위해 여러차례 비공식 접촉을 하면서 절충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다른 어떤 제안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장승길대사의 망명이라는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협상테이블에 나왔을까. 우리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용기있게 나왔다』는 인상을 미국측에 심어주고 동정심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식량원조를 보장받자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북한측은 첫날 막후협상에서 한미양국이 선(先)식량원조를 거절하자 거칠게 나왔다. 의제부문에서 완강한 입장이었다.
2차예비회담이 결렬된 뒤 한미양국 대표단의 표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국대표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지만 늘 긍정적이던 미국은 오히려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찰스 카트먼 미 수석대표는 『오늘 그들은 우리가 내놓는 어떤 제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하려 하지 않았다. 북한측의 이같은 태도에 우리는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북―미간의 갈등은 장대사 망명에 따른 미국측의 보상성 선물에 대한 양국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즉 미 정부는 식량조사단을 파견하고 북한자산의 동결해제를 위한 1차 조치를 취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대규모 식량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4자회담이 물건너 갔다고 생각하는 당사국은 없다. 회담관계자들은 한달쯤 지나 북한이 회담장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한미양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최소한 협상에 임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 정도로 북한의 형편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뉴욕〓이규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