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前총리 페레스-한승주前외무 30일 KBS대담

  • 입력 1997년 3월 29일 20시 15분


《동아일보사 고려대학교 재단법인 仁村(인촌)기념회 공동초청으로 내한한 시몬 페레스 전이스라엘총리가 중동 및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해 韓昇洲(한승주·전외무부장관)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과 대담했다. 30일 오전 8시10분 KBS 1TV를 통해 방영될 대담 요지.》 [정리〓김갑식·이원홍기자] ―수십년간 난항을 거듭한 중동평화협정이 체결된 배경은…. 『모든 여건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냉전의 종식,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의 약화를 주요인으로 들고 싶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948년 정부를 수립했다. 이스라엘은 그후 다섯차례 전쟁을 치렀지만 평화를 쟁취하지 못했고 분쟁은 계속됐다.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은 냉전대결 속에서 이러한 분쟁을 지원해왔다. 냉전이 끝나자 지금이야말로 평화를 되찾을 호기라고 생각했다. 또 협정체결당시 우리의 주된 적이었던 아라파트 PLO의장의 입지가 대단히 약해졌다고 느꼈다. 아라파트가 무너지면 온건주의자보다는 극단주의자가 뒤를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주의자가 들어서면 협상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있었다. 구체적인 협상계획을 세울 수 있는 파트너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늦기전에 아라파트에게 접근했다. 모든 것이 때가 무르익었으니 우리 손으로 평화를 건설해 보자고 했다』 ―평화협정을 위해서는 이스라엘 국민들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점을 어떻게 설득했나. 『상대편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하지 않고는 사실상 협상자체가 불가능하다. 나와 고(故) 라빈 총리는 두가지 기본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도덕적 측면이다. 즉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는 것은 유태인의 기본 율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4천년의 역사를 통해 남을 지배해본 적이 없는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점령군인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사회원로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로들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물려받을 고통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론이 반분되어 많은 저항도 있으리라고 예상했지만 결정을 더 늦출 수 없었다』 ―당시의 국론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에서는 귀하의 입장을 따르는 여론이 적었고 결국 귀하는 패배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평화를 지지하지만 모두 평화의 대가를 치르는데는 인색하다. 상대편 정당에서 우리측이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고 공격할 때 이를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여론에 굴복하기만 한다면 위대한 정치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국민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국민들의 의견을 따르면서 동시에 이끌 줄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의 의견을 따르기만 한다면 선거에서 승리를 추구한 뒤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강력한 정책도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국민을 이끌 수 있다. 갈등이 있을 때는 협상을 통해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서로의 의견사이에 놓인 교량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다리를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협상이다』 ―귀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반도와 과거 중동의 교착상태를 비교해 충고를 한다면…. 『북한은 논리적 행동보다 자신의 야욕에 따라 행동을 한다. 문제는 한국이 북한을 논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전통적으로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전략은 지리적 거리가 아니라 미사일의 사거리에 의해 결정되는데 휴전선에서 너무 가까운 서울의 위치가 위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도 한국을 불안하게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과학 기술력이 뛰어나다. 특히 한국이 짧은 기간내에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다. 이스라엘처럼 한국도 영토가 아니라 두뇌와 재능의 깊이로 살아가야 한다. 한국은 나름대로 문제를 갖고 있다. 통일을 이룰 기회가 다가왔지만 과연 통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예를 보면 한국의 통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더 이상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고 자신을 파멸로 인도하고 있으며 진정한 피해자는 북한 땅과 주민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면 「우리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또는 다른 측면에서 돕고 싶다」고 말하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느냐, 아니면 붕괴를 부추겨야 하느냐의 논쟁이 있다. 귀하의 견해는 어떤가. 『사실 나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논쟁에 끼여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언급한다면 한국은 이미 북한이 논리적 붕괴과정에 접어들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하지만 외교에 있어서는 사자 가죽을 쓴 양보다 양의 가죽을 쓴 사자의 모습을 할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이 북한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착륙시킬 준비가 돼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중동의 근본문제는 무엇이고 지금 어떤 상황으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PLO를 인정하고 있고 아라파트는 우리의 파트너다. 이것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며 평화는 점차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이스라엘의 당면 문제는 본래의 평화협상을 계속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정책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반적 국제정세에 대한 의견은…. 『기본적으로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21세기를 맞는 것은 생태학적 경험만이 아니라 역사의 변화다. 과거에는 강해지려면 더 많은 땅과 자원, 인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에서 강약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 기술 교육 정보이며 여기에는 국경도 없고 정복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제 싸우는 대신 창조하고 영토 대신 지혜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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