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총선]정치가문 부토家 결국 몰락하는가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김진경 기자] 영광과 비극의 역사로 점철된 파키스탄의 대표적 정치가문 부토가(家)는 결국 몰락하는가. 베나지르 부토의 총선패배는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부토가와 파키스탄인민당(PPP)에는 커다란 타격이다. 지지기반이었던 신드주(州)에서조차 부토를 외면한 것으로 드러나 부토가의 생명도 끝나간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명문 부토가를 탄생시킨 줄피카르 알리는 사회주의적 강령을 역설한 민중주의자. PPP를 출범시킨 후 지난 70년 선거에서 승리한 뒤 총리가 됐다. 그러나 알리는 77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에서 물러난지 2년만에 처형되는 운명에 처한다. 처형되기전 알리는 아내 누스라트를 PPP당수에 지명했다. 아홉번이나 투옥된 베나지르는 88년 지아가 갑작스런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한뒤 실시된 총선에서 PPP를 승리로 이끌어 35세에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베나지르와 달리 남자형제들은 망명생활을 통해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다. 무르타자는 남동생인 샤와나즈와 함께 정부요인암살 등 테러를 자행했다. 샤와나즈는 85년 프랑스 칸에서 의문의 변시체로 발견됐다. 베나지르는 88년에 이어 93년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무르타자를 부르지 않았다. 무르타자가 93년 16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으나 공항에서 체포, 수감됐다. 두 남매의 관계는 악화됐다. 모친 누스라트는 무르타자를 지지했다. 무르타자는 지난해 9월 총격전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과 관련, 베나지르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수감됐다. 무르타자의 미망인 긴와는 남편이 만든 PPP샤히드당 당수에 취임, 총선에 나서 정치가문 며느리로서의 저력을 보여줬다. 베나지르가 재기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이 보여줬듯 정치적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부토가가 「민주투사」이미지만 가지고는 국민들을 설득할수 없기 때문에 재기가 쉬울 것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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