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이스탄불로 흩어진 승객들…한타바이러스 ‘다음 감염자’ 추적전

  • 동아닷컴
  • 입력 2026년 5월 8일 15시 11분


크루즈선 하선 뒤 국제선 타고 각국 이동
안데스형 변종, 긴 잠복기에 접촉자 추적 비상

4월 24일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섬 인근 해상을 항해 중인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선내에서 안데스형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면서 세계 보건당국이 승객 이동 경로와 접촉자 추적에 나섰다. Getty Images
4월 24일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섬 인근 해상을 항해 중인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선내에서 안데스형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면서 세계 보건당국이 승객 이동 경로와 접촉자 추적에 나섰다. Getty Images
남대서양 크루즈선에서 시작된 희귀 한타바이러스 감염 이후 세계 보건당국이 승객 추적에 나섰다. 승객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스위스 취리히, 터키 이스탄불 등으로 흩어지면서 각국 보건당국과 항공사,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동 경로와 접촉자 확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남대서양 크루즈선 ‘MV 혼디우스(MV Hondius)’에서 발생한 안데스형 한타바이러스 감염 이후 국제 추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감염자는 8명, 사망자는 3명이다.

보건당국이 긴장하는 이유는 바이러스 종류 때문이다. 한타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설치류의 침, 소변, 배설물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안데스 바이러스(Andes virus)는 한타바이러스 가운데 제한적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유일한 변종이다.

● “배는 안전하다”던 크루즈선

사건은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선에서 승객 1명이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유튜버이자 여행 블로거 루히 체넷(Ruhi Çenet)은 선장이 승객 사망 사실을 알리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다.

영상에서 선사 관계자는 “우리는 전염성이 없다. 배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후 승객들은 평소처럼 뷔페에서 식사하고 강연을 듣고 별 관측 행사에 참여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을 위로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승객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평범한 애도와 일상이었지만, 뒤늦게 보면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었던 접촉 장면들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과학자도 “세 번 다시 확인했다”

남아공 국립감염병연구소(NICD)의 재클린 웨이어(Jacqueline Weyer) 박사는 4월 말 MV 혼디우스호 승객 1명이 남아공으로 긴급 이송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환자는 코로나19와 독감, 레지오넬라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었다. 연구진은 조류독감과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가능성을 검토했고, 몇 시간 뒤 검사 결과는 한타바이러스를 가리켰다.

웨이어 박사는 WSJ에 “분석을 하고 다시 했고, 또 다시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를 보는 그 몇 순간 동안은 자신이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하게 된다”고도 했다.

남아공과 스위스 연구진은 이번 집단 감염과 관련된 바이러스가 안데스형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 “코로나처럼 퍼지진 않지만…”

안데스형 한타바이러스는 코로나19나 독감처럼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지는 바이러스는 아니다.

미국 뉴멕시코대 보건과학센터의 면역학자 스티븐 브래드퓨트(Steven Bradfute) 교수는 WSJ에 “음식 공유나 생활 공간 공유 같은 매우 가까운 접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규모 폭발적 유행으로 이어지는 바이러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크루즈선 환경은 예외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승객들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식사와 행사 동선이 반복적으로 겹치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의 병리학자 제프리 소렐(Jeffrey SoRelle) 박사는 이번 상황을 “전염병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적절한 접촉 조건을 만난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이라고 표현했다.

최대 8주까지 보고되는 긴 잠복기도 우려 요인이다. 감염자가 별다른 증상 없이 국제선을 타고 여러 국가를 이동한 뒤 뒤늦게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취리히·이스탄불까지 이어진 추적

WSJ에 따르면 일부 승객은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섬에서 하선한 뒤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스위스 보건당국은 크루즈 여행 후 4월 말 귀국한 남성이 취리히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입원했다고 밝혔다. 그의 아내는 증상은 없지만 예방 차원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남아공에서 네덜란드로 향한 항공편에 한타바이러스 사망자가 탑승했었다며 동승객들에게 노출 가능성을 안내했다.

남아공 지역 항공사 에어링크도 세인트헬레나발 항공편 승객들에게 보건당국에 연락하라고 공지했다. 항공사는 승객과 승무원의 이름, 연락처, 좌석 정보 등을 보건당국에 전달했다.

크루즈선은 여전히 항해 중이다. WSJ에 따르면 MV 혼디우스호는 공중보건 우려로 케이프베르데 입항이 거부된 뒤 카나리아 제도로 북상하고 있다. 선사 측은 의사 3명이 추가로 승선해 진료를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터키로 돌아간 루히 체넷 역시 공항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은 뒤 터키 보건당국에 먼저 연락했다. 그는 이후 혈액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현재 자가격리에 들어간 상태다.

● SNS·항공 데이터까지 동원된 추적

이번 사건은 현대 방역이 병원과 실험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유튜버 영상과 SNS 게시물, 항공사 좌석 정보, 국제선 이동 기록까지 역학조사 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환자의 기억과 진술에 크게 의존했다면, 지금은 온라인에 남은 이동 흔적과 디지털 기록까지 방역 데이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병원체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샷건 시퀀싱(shotgun sequencing)’이라는 유전자 분석 기술도 활용됐다. 환자 검체 속 유전물질을 대량 분석해 정체가 불분명한 병원체까지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번 사건에서 첫 환자의 양성 결과가 확인된 뒤 남아공 연구진은 먼저 사망한 승객의 아내 검체도 다시 검사했다. 그는 요하네스버그 응급실 도착 후 사망했고, 남아 있던 검체에서 한타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은 고열과 근육통 등으로 시작해 심한 경우 폐부종과 급성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별한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확립돼 있지 않아 조기 발견과 접촉자 추적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WHO는 현재 공중보건 위험 수준은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각국 보건당국은 MV 혼디우스호 승객과 승무원, 하선 뒤 이들과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들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선사인 오션와이드 익스페디션은 지난 3월 이후 승객과 승무원 정보까지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보건당국의 추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긴 잠복기 때문에 추가 감염 여부는 앞으로 며칠에서 몇 주 사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한타바이러스#안데스바이러스#MV혼디우스#크루즈감염#접촉자추적#세계보건기구#한타바이러스폐증후군#WHO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