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한국무용과 딱 부러지는 발레, 갓을 매개로 조화”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5일 16시 50분


윤별발레컴퍼니 창작발레 ‘갓’

4일 서울 서초구 한 빌딩의 지하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베리아허스키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댄서들은 바닥에 앉아 모자를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연습 시간, 눈빛이 달라진 댄서들은 흑립(검은 갓)과 주립(붉은 갓), 정자관, 삿갓 등을 오브제로 각양각색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모자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2024년 초연부터 지난해 전국 투어까지 모두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창작무용 작품 ‘갓’. 뜨거운 연습 현장에서 이 작품을 만든 윤별발레컴퍼니의 예술감독 윤별과 안무가 박소연을 만났다.

‘갓’은 박 안무가가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 있을 때 시작됐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 나온 갓이 유럽에서 화제인 걸 보고 “발레리나가 갓을 쓰고 춤추는 작품을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윤 감독의 기획을 통해 ‘갓’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처음엔 정부의 ‘청년도약지원사업’ 창작지원금을 받았지만 충분하지 않아 윤 감독이 사비를 투자했다. 그럼에도 장인들이 만든 갓은 너무 고가여서, 첫 공연 땐 박 안무가의 아버지가 방충망을 겹쳐 만든 갓을 썼다.

“그 방충망 갓은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에서 지금도 연습실 입구에 걸어 뒀어요. 지금 이 연습실도 이 갓 덕분에 만든 거나 마찬가지죠, 하하.”

창작발레 ‘갓’은 윤별발레컴퍼니가 창단하고 만든 첫 작품. 시작할 때만 해도 팬데믹으로 공연이 끊겨 풀죽은 동료들과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갓’은 처음부터 소셜 미디어에서 퍼지며 금방 인기를 얻었다. 그 비결은 뭘까. 두 사람은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함과 소셜 미디어에 친화적인 ‘킥’이 되는 안무”라고 자평했다.

‘갓’에서 최고 인기 있는 무대는 “섹시 놀부”라는 별명이 붙은 ‘정자관’. 검은 옷을 입은 남성 무용수들이 곰방대를 들고 거만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한다. 곰방대를 바닥에 탁탁 두드리거나 삐딱하게 앉아 연기를 뿜어내는 제스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용수들이 갓의 테두리를 손으로 쓰윽 훑어내는 장면 등 ‘도파민’적 요소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뭣보다 ‘갓’은 정적이고 차분한 한국 무용과 고도의 정확한 동작을 요구하는 발레라는 두 장르가 틀을 깨고 만났다는 게 강점이다. 젊은 무용단의 패기를 바탕으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소재가 만나 시너지를 만들었다. 박 안무가는 “독일에선 전통적인 발레보다 개성 강한 컨템포러리 공연이 항상 매진되는 경향이 있다”며 “그걸 보면서 ‘우리만의 것’을 하고 싶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지금이 최전성기의 ‘갓’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공연 횟수가 늘어나고 비슷한 작품이 많아지면 정형화가 될 수밖에 없다”며 ‘원조 맛집’은 지금이란 얘기다.
창작발레 ‘갓’은 올해 6개 도시(화성 대전 부산 서울 하남 전주)에서 투어를 진행한다. 서울 공연은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28, 29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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