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에서 싸우며 영웅 도왔지만
男 우선시하는 가부장적 면모 지녀
◇아름답고 살벌하고 웃기는 우리 곁의 그리스 여신들/나탈리 헤인스 지음·홍한별 옮김/400쪽·2만2000원·돌고래
뱀이 휘감은 머리카락, 한 손에는 횃불,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는 세 명의 여성. 상상만으로도 강렬한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들’이다. 이들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잘못을 저지르면 세상 끝까지 쫓아가 벌을 준다. 끔찍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달리 보면 존재만으로도 공포를 일으켜 자연법을 지키게 한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복수의 여신들을 ‘약속과 맹세의 수호자’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책은 현대적 관점에서 그리스 여신들을 새롭게 분석한다. 방송인으로 서양 고전문학을 널리 알려온 저자가 방대한 양의 고전 문헌과 회화, 고대 유물 등을 바탕으로 여신들이 고대사회에서 실제로 수행했던 역할과 기능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가장 입체적으로 설명된 여신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다. 고대문학 ‘오디세이아’나 ‘일리아스’ 등을 보면 아테나는 아테네 안에서 매우 사랑받는 여신이었다. 무모함보다는 전술을 통해 전쟁에 임했고, 최전선에서 함께 싸웠으며, 영웅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아테나 조각상이 다수 제작돼 남아 있는 것 또한 그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아테나는 굉장히 차별적인 여신이기도 했다. 아테나는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망가지고 죽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영웅 아이아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동료의 유품을 빼앗긴 것에 분개해 이성을 잃었을 때 그걸 지켜보며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가 없이 태어났으니 모든 일에서 남자의 편이며, 전적으로 아버지를 우선시한다”고 말할 만큼 가부장적인 면모를 지니기도 했다.
주로 남성 작가들의 관점에서 다뤄졌던 여신들의 면면을 새롭게 살펴보고 재해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큰 조명을 받지 못했던, 화덕을 지키는 여신 ‘헤스티아’를 비중 있게 다룬다. 가사의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에 헤스티아는 존재감이 크지 않은 여신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화덕이 모든 집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헤스티아를 “모든 곳에 거주하는 여신”으로 재해석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신선한 관점에서 즐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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