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동 경제협력 포럼 참석차 내한한 메흐란 캄라바 카타르 조지타운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트럼프 2.0’ 시대 신(新)중동 질서가 이스라엘에 마냥 유리하지 않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만난 메흐란 캄라바 미국 조지타운대 카타르캠퍼스 정치학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압박을 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과의 거래적 이익을 중시하고, 미국이 개입하는 해외 분쟁의 장기화를 극도로 꺼리는 점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친(親)이스라엘 성향이자 네타냐후 총리와 ‘브로맨스’를 과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계획을 적극 지지했다. 캄라바 교수는 “외교 무대에서 솔직하고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미-이스라엘 관계의 깊고 조직적인 본질이 드러났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걸프 우방이 얽힌 문제에는 보다 균형잡힌 태도를 취하는 점에 주목했다. 캄라바 교수는 “트럼프는 네타냐후가 선을 넘고 과잉 대응하자 따끔하게 혼낸(chasten)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고 분석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이란계 미국인인 캄라바 교수는 미국과 중동을 오가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는 중동 전문가. 지난달 2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한국무역협회(KITA)가 공동 주최한 ‘한-중동 경제협력포럼’ 기조 연설을 계기로 한국에 네번째로 방문했다.
캄라바 교수는 “이스라엘은 2023년 가자전쟁 개전 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벼랑 끝으로 몰며 큰 승리를 거뒀다”면서도 “이란 정권 붕괴에 실패했고 카타르 공격이라는 전략적 실책을 저질렀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브로맨스’에 이상 징후가 생긴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지원했고, 이를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깊고 조직화된 미-이스라엘 관계의 본질이다. 외교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솔직하고 노골적인 태도를 통해 드러났을 뿐이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중동 지역에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하자 단호히 징계했다. 올 9월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에서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 사니 카타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약 3주 전 카타르 수도 도하 공습 작전을 공식 사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타르는 미 본토 밖의 최대 공군기지를 보유한 우방이다. 미국은 카타르에 자신들이 연루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자 비속어를 동원해 경고한 점도 눈길이 간다. 올 6월 이란과 이스라엘 간 ‘12일 전쟁’의 휴전 직후 이스라엘이 공격을 지속하며 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자 ‘빌어먹을(What the fXXX)’이라는 욕설을 써가며 강하게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같은 ‘영원한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 빠른 승리가 확실한 군사력 사용은 주저하지 않는다. ‘단발성 군사력 과시’는 트럼프 2기 중동 정책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전쟁 도중 이란 핵시설 공습을 강행한 뒤 이를 외교 치적으로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중동 질서를 어떻게 재편하고 싶어 하는가.
“아브라함 협정을 확장해 친이스라엘적이고 친미적인 방식으로 중동의 전략 환경을 바꾸고자 한다고 본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이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스라엘에 적극 맞서지는 않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반(反)이스라엘 세력이 전복되는 것이 목표다.”
―중동전쟁으로 이란은 얼마나 약해졌는가.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년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벼랑 끝으로 몰며 이란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란도 더 이상 ‘저항의 축’이 존재하지 않고 억제력의 원천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는 미사일 프로그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12일 전쟁은 네타냐후 총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냈다. 그는 정권 붕괴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사회적 결속력이 발동됐다. 이란 군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할 능력이 된다’는 군사적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또 혼란 속에서 대중 봉기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랍인, 발루치인, 쿠르드인 등 소수 민족이 이란이라는 국가의 물리적 해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됐다.
향후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재확대 여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손에 달려있다. 가자전쟁 역시 군사적 목표보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속되었다. 연립정부 내 극우 세력의 요구와 그의 정치 생명이 걸린 형사 재판에 많은 것이 결정될 것이다.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휴전 위반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동 긴장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이며 86세 고령인 알리 하메네이 사후(死後) 어떤 격변이 예상되는가.
“하메네이 아들이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을지, 핵무기 개발에 착수할 지를 두고 이란은 갈림길에 설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평소와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또 하메네이 사망으로 미-이란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생기지만, 최소 몇 년은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이란 체제 특성상 새 지도자가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에도 주목했는데 튀르키예는 상대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튀르키예는 조용한 강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매우 성공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교류를 강화했고, 특히 유럽과 아제르바이잔을 연결하는 주요 가스관은 튀르키예를 거쳐 간다. 유럽에도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도 심화했다. UAE와 카타르는 튀르키예의 주요 투자자가 됐고, 튀르키예는 두 나라의 방위 산업(방산) 핵심 파트너가 됐다.
이를 두고 신(新)오스만주의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중견국으로서 권력을 투사한 현실 정치라고 본다. 튀르키예와 관련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2026년 중동에서 예상되는 주요 변화를 꼽자면…
“이란을 주시해야 한다. 물 부족 문제부터 하메네이의 건강 문제까지 이란의 앞날에는 변수가 가득하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끝났다고 볼 수 없다. 가자지구에서 7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만들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및 UAE 간의 경쟁 심화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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