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4일(현지 시간) 낸시 펠로시(오른쪽) 당시 미 하원의장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중 그의 연설문을 찢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연설문을 펜스 부통령에게 전달할 때 펠로시 의장이 청한 악수를 무시했는데 탄핵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워온 두 사람은 이날도 이런 식의 신경전을 벌였다. 2025.11.07 워싱턴=AP 뉴시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85)가 6일(현지 시간) 내년 11월에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정계 은퇴 선언으로, 1987년 하원에 입성해 도합 20선(選)을 한 펠로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펠로시와 오랜 앙숙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악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은퇴해서 기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펠로시는 이날 자신의 선거구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영상 연설에서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며 “샌프란시스코는 자신의 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고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펠로시는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미국의 이상을 지켜내는 싸움을 계속함으로써 그 길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민주주의 훼손 시도에 맞서라는 의미”라는 분석도 나왔다. 펠로시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경 이민 정책, 언론 탄압 논란 등을 겨냥해 “지구상에서 최악의 존재(worst thing on the face of the Earth)”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로부터 펠로시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그가 형편없는 일을 했고 나라에 막대한 피해와 명성의 손실을 안겨준 사악한 여자(evil woman)라고 생각한다”며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펠로시는 여성의 유리천장을 직접 깨며 새 역사를 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볼티모어 시장과 민주당 하원 의원을 지낸 부친 등을 보면서 자랐다. 결혼 후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한 펠로시는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987년 47세에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하원 원내대표로서 2003년부터 20년간 민주당을 이끌었고 그중 2007∼2011년, 2019∼2023년 두 차례에 걸쳐 하원의장을 지냈다.
펠로시는 ‘강골 외교’로도 알려졌는데, 2022년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중국은 다른 미국 의원들의 대만 방문을 막을 수 없다”며 대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크게 반발하며 대만산 감귤류 과일 등 수출입을 일시 중단했다.
펠로시는 8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4인치(약 10cm) 높이의 하이힐을 신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2018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하며 8시간 7분 동안 하이힐을 신고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가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말 룩셈부르크 방문 중 대리석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엔 하이힐 대신 단화를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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