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stop me now” 떼창은 그칠 줄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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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관 가보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인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이브 에이드 장면. 퀸의 멤버들(왼쪽부터 기타 브라이언 메이, 드럼 로저 테일러, 보컬 프레디 머큐리, 베이스 존 디콘)이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인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이브 에이드 장면. 퀸의 멤버들(왼쪽부터 기타 브라이언 메이, 드럼 로저 테일러, 보컬 프레디 머큐리, 베이스 존 디콘)이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형님들, 정말 오랜만에 뵙겠네요.’

내일은 세간의 화제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보러 가는 날. 그 옛날의 향수를 더 진하게 느끼고 싶어 ‘싱얼롱(singalong)’ 상영관으로 예매를 했다. 설레는 마음에 그 옛날, 30여 년 전에 샀던 낡은 LP(long-playing record)앨범을 꺼냈다.

‘THE WORKS.’

2년간의 휴지기를 가진 퀸(Queen)이 전작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1984년 내놓은 앨범. ‘작품’이란 앨범 이름처럼 여기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나오는 ‘I want to break free’ ‘Radio Ga Ga’ 등 걸작들이 수록돼 있다. 앨범 사진 속 형님들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빨랑 와.’


○ 두근두근 울렁울렁


지난달 27일 오후 5시 반. 상영 25분 전. 서울 메가박스 강남의 싱얼롱 상영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길게 줄 선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런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좌석도 90여 석 중 3분의 1 정도만 찼고, 40∼60대는 서너 명뿐이고 대부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었다. 평일인 데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기 때문일까? 이 상영관이 초대형 화면으로 몰입감을 주는 아이맥스관도, 양 벽면까지 활용해 공연장의 현장감을 살려주는 스크린 X관도 아닌 일반관인 탓도 있는 것 같다.

‘형님들, 죄송합니다. 좀 더 좋은 곳에서 뵈었어야 하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싱얼롱 상영을 하는 곳은 우리를 포함해 16개국. 아이러니하게도 퀸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싱얼롱 상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있던 한 중년 여성이 양해를 구했다. “저 죄송한데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섯 번째 보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중간중간 사진도 좀 찍고 그럴게요. 불편하거나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관객이 적어 ‘떼창’이 없을까봐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불편이라니? 목청껏 따라 불러주시면 제가 더 고맙지요….(기대와 달리 그녀는 영화 막판에 약간 흥얼거리는 정도를 제외하면 상영 내내 영화를 동영상으로 찍는 데만 집중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한 것 같다. 음악은 아니고.)

영화가 시작됐다. 조금씩 나오는 주옥같은 명곡들. ‘Love of my life’ ‘We will rock you’ ‘under pressure’….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따라 불러야 하는 거야? 모든 노래가 영화 스토리에 맞춰 조금씩만 나오다 보니 감정에 발동이 걸리기가 힘들었다. 막 흥이 나 따라 부를 만하면 끝나는 노래들…. 시작 초 몇몇 곡은 따라 부를 수 있게 자막 아래 영어 가사가 함께 깔렸지만 영화 화면을 보느라 시선이 분산돼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많이 알려진 ‘Love of my life’는 프레디 형님이 피아노를 치며 이 곡을 작곡하는 장면에서 나왔는데…, 가사 자막이 없었다! 그나마 1분도 채 안 돼 끝났고…. 여기에 그다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보통 한국인들의 성향이 겹치면서 대부분 조용히 영화 감상만 하고 있었다. 러닝타임 120분 중 90여 분이 지날 때까지…. 다 같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곳은 도대체 어디인지.

물론 몇몇은 큰 소리는 아니지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한 아저씨가 뭐라고 했다. “조용히 합시다. 영화를 볼 수가 없네….” “여기 싱얼롱인데요?” “싱얼롱이 뭔데? 공공장소에서 피해 주면 안 되지. 상식 아닌가?” “헐∼.”

영화가 끝난 뒤 그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그런 게 있었냐?”며 자기는 몰랐고 하도 영화가 유명하다고 해서 일하다가 비는 시간에 보러 왔다고 했다. 상영관 입구에 싱얼롱 상영 관람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일반 관람 안내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 드디어 웸블리!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 MX관에서 열린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현장에서 관객들이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 MX관에서 열린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현장에서 관객들이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드디어 20여 분을 남기고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1985년 7월 13일, 에티오피아 기아 문제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열린 곳.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만 7만2000여 명. 전 세계 19억 명이 시청했다는 저 전설적인 공연.

피아노에 앉은 프레디 형님이 ‘보헤미안 랩소디’(1975년 발매된 앨범 A Night at the Opera의 타이틀곡이자, 이 영화의 제목)의 전주를 치며 “Mama∼, just killed a man∼” 하고 부르자 객석에서도 닫힌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이 곡은 국내에서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는데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때문이란 설과 제목인 보헤미안이 체코의 지명 중 하나인데 당시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든 유치한 건 마찬가지다. 이때문에 1985년 MBC가 이 공연을 녹화 중계하면서 이 곡은 뺐다.)

‘Bohemian Rhapsody’ ‘Radio Ga Ga’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고, 관객들의 호응과 노래도 점차 고조됐다. 특히 ‘We Are The Champions’에서는 비록 앉은 채였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좀 더 목청을 높이며 따라 불렀다.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많은 관객들이 떼창을 한 노래는 ‘Don‘t stop me now’였다. 이 곡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는데, 대학생 10여 명은 불이 켜진 상태에서도 신이 나서 손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이 곡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이었는데, 마지막 곡인 ‘show must go on’이 나오자 따라 부르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곡은 신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진지한 곡이다.

영화가 끝난 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 분명히 옛날 향수 때문에 찾은 것으로 보이는 50대 중년 아저씨에게 물었다. “싱얼롱에 왔는데 노래를 안 따라 하시던데요….” 그는 “돌았수? 나 혼자 부르게?”라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열심히 따라 부르던 한 여학생은 “영화 보며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재미있을 것 같아 왔는데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싱얼롱은 ‘케바케’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케바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줄인 말.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은 관객 성향이나 그날 분위기에 따라 조용한 곳도, 열광적인 곳도 있는 등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뭔가 큰 것을 얻은 듯 아주 좋아라 했다. “아저씨 근데 드럼 완전 잘생기지 않았어요?”

프레디 머큐리 사망 27주기를 추모해 메가박스가 지난달 24일 전국 8개 MX관에서 연 싱얼롱 행사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프레디 형님은 1991년 11월 24일 에이즈로 사망했다.) 주최 측은 행사를 위해 떼창을 유도할 ‘프로 떼창러’를 모집했는데 500명 넘게 지원해 64명이 선발됐다.(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 중 10만 명 정도가 싱얼롱 관람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대했던 것만큼 열광적인 떼창이 없어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나기는 했겠지만 뭔가 아련한 여운은 갖지 못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꽃처럼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는 그것이 더 좋았다. 안녕, 프레디. 안녕 퀸….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보헤미안 랩소디#퀸#프레디 머큐리#싱어롱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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