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솔로는 모험? 걸그룹, 홀로서기 나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자작곡 앞세워 편견에 도전장

20세기 말 음반시장이 몰락하면서 ‘여성 솔로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가요계의 공식이 암암리에 자리 잡았다. 아이유, 백지영, 태연(소녀시대) 정도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남성 솔로, 남녀 아이돌 그룹에 비하면 시장 수요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었다. 열혈 팬덤과 구매력의 중심이 10∼30대 여성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공식을 깨고 여성 솔로, 특히 여성그룹 멤버들의 솔로 데뷔가 잇따른다. 약속한 듯 자작곡을 내세워 음악성을 강조하는 것도 눈에 띈다. 업계에서는 전속 계약 연장 문제, 기획사와 가수의 이미지 다변화 전략, 걸크러시(girl crush·여성이 여성에게 반하는 현상) 확대를 그 배경으로 본다. 지난달 에이핑크의 정은지가 ‘하늘바라기’로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한 데 이어 이달에만 소녀시대 티파니(11일), 달샤벳 수빈(12일), 전 소녀시대 제시카(17일)가 줄줄이 자작곡을 넣은 솔로 데뷔작을 냈다.

다음 주자는 f(x)의 루나. 31일 낸 첫 솔로앨범 ‘Free Somebody’에 실린 6곡 중 2곡을 자작곡으로 채웠다. 일렉트로닉 팝 스타일의 ‘예쁜 소녀(I Wish)’, 몽환적인 R&B 발라드 ‘My Medicine’이다. 특히 후자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가사로 옮겨 자기 얘기를 강조했다. 정은지가 ‘하늘바라기’에서 아버지를 향한 메시지를 담은 것과 상통한다. 루나는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가창력을 보여줬고 각종 TV와 뮤지컬 출연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 왔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지난해 f(x) 엠버를 필두로 티파니, 루나를 출격시켰다. 여성 솔로로는 2000년 보아, 지난해 태연에 이어서다. SM 관계자는 “그룹 일원으로서, 솔로로서 보여줄 역량과 매력이 각각 다르다. 현재 그룹 활동이 없어 시기도 맞았다”면서 “자작곡 수록은 국내외 유명 작곡가들과 경쟁을 거친 결과”라고 했다.

티파니, 제시카, 루나는 전현 소속 그룹의 음악적 DNA인 댄스, 전자음악, 발라드의 범주 안에서 개성을 발휘한 반면 어쿠스틱 팝을 강조한 정은지와 수빈의 앨범은 흥미롭다. 정은지의 복고적인 발라드들은 주연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느낌과도 상통한다.

걸그룹 솔로 데뷔 러시에 대해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전속계약 만료에 즈음해 기획사에선 계약 연장의 ‘당근’으로, 멤버로서는 자기 캐릭터 형성의 기회로 솔로 앨범 카드에 뜻을 모으기도 한다. 자작곡의 경우 프로 작곡가들과 공동 작·편곡을 함으로써 부담을 줄이는 편”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수빈의 행보는 이채롭다. 이미 모그룹인 달샤벳의 작년 앨범 ‘Joker is Alive’의 전곡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이번 솔로 데뷔작의 2곡 모두 마찬가지다. 댄스그룹 시절의 전자음을 최소화한 대신 어쿠스틱 피아노를 뼈대로 R&B 가창을 더했다. 가수를 모르고 들으면 인디 싱어송라이터 같은 인상을 준다.

엠버의 꾸준한 걸음도 인상적이다. 올해 벌써 세 개의 자작곡을 디지털 싱글로 발표했다. 이달에만도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한 ‘On My Own’ ‘Need to Feel Needed’를 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엠버를 가장 주목했다. 그는 “f(x)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와 의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면서 “작년 ‘Beautiful’에서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라는 화두를 던진 뒤 올해 ‘Borders’에서 경계를 벗어나 너 자신 그대로 멋진 삶을 살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심화시키고 있다. 랩과 보컬이 다 가능해 메시지 표현에 제약이 적다는 것도 캐릭터 형성에 장점”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정은지#제시카#티파니#수빈#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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