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현실 속 ‘장그래’ 김정수씨 “‘26년간 난 뭘했지’ 장그래 푸념 땐 가슴 아팠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2월 5일 06시 55분


임시완이 연기하는 장그래는 10대를 온전히 바둑에 바쳤지만, 프로기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바둑과 무관한 업종에 취직해 고단한 일상에 부대끼며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김정수씨는 장그래와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사진제공|tvN
임시완이 연기하는 장그래는 10대를 온전히 바둑에 바쳤지만, 프로기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바둑과 무관한 업종에 취직해 고단한 일상에 부대끼며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김정수씨는 장그래와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사진제공|tvN
■ 우리는 왜 ‘미생‘에 열광하는가?

7세 입문…18세까지 바둑 인생
프로 입단 고배끝 다
른 길로 턴
입사후 나도 장그래처럼
숨겼죠
이젠 뭘 해야하나 겁도 났고요
바둑과 닮은 인생…본질은 승부
장그래의 마지막이 기대됩니다


한때는 바둑 영재, 7살에 바둑을 만나 10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입문했다. 연구생 자격이 끝나는 18살까지 오로지 프로 입단을 위해 10대를 고스란히 바둑에 바쳤다. 하지만 끝내 입단에 실패하면서 맨땅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 이야기다. 가상의 현실인 TV 속이 아닌 현실에도 장그래와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 광고부에 근무하는 김정수씨(33·아마 6단·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김씨는 장그래의 실존 모델은 아니다. 원작 웹툰의 윤태호 작가는 지인을 통해 김씨처럼 프로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장그래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김정수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둑을 시작해 22살까지 ‘바둑만’ 했다. 중고교 시절 모두 바둑 특기생으로 시험 볼 때만 학교에 가고, 바둑 도장에서 기숙생활을 했다.

그도 장그래처럼 인생을 바둑에 걸었다. 프로기사 입단 시험에서 계속 고배를 들었고, 마지막으로 도전한 2004년 일반인 입단 대회에서도 아깝게 져 꿈을 접어야 했다.

사실 프로 바둑기사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입단할 수 있는 프로기사는 6명 정도. 한국기원에 소속된 100여명의 연구생들이 시험을 치른다.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이들은 이후 대부분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한다. 장그래나 김씨처럼 전혀 다른 업종에 취직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장그래와 김씨는 닮았다.

그런 김씨에게 ‘미생’은 남의 일이 아니다. 볼 때마다 흠칫 놀랄 정도다. 이미 2012년 웹툰이 연재될 당시에도 “재미있게 봤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지자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장그래가 마지막엔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말한다.

김정수 씨. 스포츠동아DB
김정수 씨. 스포츠동아DB

극중 장그래는 입사 이후 직장 동료들에게 프로 입단을 준비한 사실을 숨긴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남들처럼 학교 공부를 한 게 아니다. 10년 이상 바둑을 해왔기 때문에 이젠 뭘 해야 하나 겁이 났다. 장그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둑은 내겐 상처이고 아픔이었다. 입단 실패 후 3∼4년 정도 바둑을 멀리 했다.”

극중 장그래는 “나는 스물여섯 동안 뭐하고 살았나” 푸념한다. 김씨는 “완전 공감한다”며 웃었다.

“바둑을 하는 사람은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바둑 관련 일을 한다.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다.”

김씨는 “바둑과 인생은 정말 닮았다”고 말한다.

“본질은 승부다. 사람의 마음이 바둑판에 표출된다. 바둑을 두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바둑판에서 인생을 찾는 것 같다.”

바둑에는 기풍(棋風)이란 게 있다. 기사의 독특한 방식이나 개성을 이르는 말이다. 김씨의 기풍은 ‘두터운 실리형’이다. 차분하게 판을 이끌고 가면서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그가 보는 장그래의 기풍은 어떨까.

“장그래의 성격상 공격형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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