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영화가 달려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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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극장용 영화인 ‘와즈다’. 여성 감독 하이파 알만수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사우디 여성을 옭아맨 금기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담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극장용 영화인 ‘와즈다’. 여성 감독 하이파 알만수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사우디 여성을 옭아맨 금기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담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미지의 영역’ 아랍영화가 몰려온다.

19일 개봉하는 ‘와즈다’는 특별한 영화다. 2012년 작인 이 영화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최초의 극장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사우디는 보수적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영화 제작과 상영, 음악, 무용 같은 문화활동이 금지돼 있다.

‘와즈다’는 이슬람 율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열 살 소녀 와즈다(와드 무함마드)가 주인공인 극영화다. 와즈다는 어머니가 “사탄의 소리”라고 하는 미국 팝음악을 좋아하는 왈가닥 소녀. 그는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꿈꾼다. 와즈다는 주변의 방해 속에서 자전거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꾸란 읽기 경진대회에 출전해 상금을 노린다.

아랍영화제 개막작인 이집트 영화 ‘팩토리 걸’ 백두대간 제공
아랍영화제 개막작인 이집트 영화 ‘팩토리 걸’ 백두대간 제공
영화에는 사우디 여성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제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와즈다의 아버지는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새 아내를 집에 들이려고 한다. 와즈다의 어머니는 저항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다. 어머니는 와즈다에게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처녀막이 터질지 모른다는 이유다. 와즈다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여자 목소리는 벗은 몸과 같다”며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학생을 훈육한다.

‘와즈다’의 제작 과정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하이파 알만수르 감독(39)은 사우디에서 태어나 이집트 아메리칸대와 호주 시드니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신여성이다. 만수르 감독은 외국 영화사가 제작에 참여하면 사우디 당국의 제한이 완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세계 여러 영화사에 협조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결국 독일 독립영화 제작사 레이저필름이 제작에 참여했다.

야외촬영이 문제였다.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을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만수르 감독은 촬영 중 남자 배우와 스태프에게 차 안에서 무전기로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촬영 내내 이슬람 보수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사우디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하지만 영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2012년 4월 율법이 개정됐다. 영화는 2013년 밴쿠버 영화제 최우수 신인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각종 상 19개를 받는 성과를 올렸다.

19∼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내 영화관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아랍영화제(fest.korea-arab.org)가 열린다. 이슬람권 영화 하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스가르 파라디 감독으로 대표되는 이란 영화가 떠오르지만 이번 영화제에선 국내서 접하기 어려운 레바논 모로코 아랍에미리트 알제리 같은 국가의 영화도 볼 수 있다. 영화제 기간에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이슬람 문명에 대한, 김정아 한국외국어대 외국문학연구소 연구원이 아랍문학에 대한 강연을 연다.

개막작은 지난해 두바이 영화제 최우수 아랍영화상을 수상한 이집트 영화 ‘팩토리 걸’. 공장에서 일하는 21세 하층민 처녀 히얌이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레바논 영화 ‘블라인드 인터섹션’, 카타르의 ‘사랑은 바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쿠웨이트의 ‘내 안의 아버지’ 등을 만날 수 있다.

영화제 공동 주관사인 영화사 백두대간의 최낙용 부대표는 “이번 영화제의 모토는 아랍에 한발 다가서기”라며 “영화를 통해 아랍인의 삶을 소상히 들여다보고 오해와 편견을 허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아랍영화#와즈다#팩토리 걸#아랍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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