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목마른 일본 사회, 해녀출신 아이돌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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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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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日 NHK TV 아침드라마 ‘아마짱’

일본 NHK 아침드라마 ‘아마짱’의 주인공 아키(노넨 레나). 일본 NHK TV 화면 촬영
일본 NHK 아침드라마 ‘아마짱’의 주인공 아키(노넨 레나). 일본 NHK TV 화면 촬영
아침드라마에 아이돌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아이돌의 직업이 해녀다?

이런 독특한 설정의 NHK TV소설 ‘아마짱’은 올해 일본 드라마 최고의 히트작으로 꼽힌다. 매회 시청률이 20%에 육박한다. 등장인물이 놀랄 때마다 외치는 사투리 ‘제제’는 유행어가 됐다. 드라마의 배경인 이와테 현은 아마짱을 본뜬 관광코스로 인기 관광지가 됐다.

이야기는 도쿄의 평범한 여고생 아키(노넨 레나)가 엄마를 따라 해녀인 외할머니가 사는 도호쿠(혼슈 동북부) 지역 어촌마을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물질하는 할머니 모습에 홀딱 반한 아키는 대를 이어 아마(해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고생 해녀 아키는 우리나라 고추아가씨 격인 이른바 ‘지역 아이돌’로 스타가 돼 침체된 마을을 되살리는 원동력이 되고, 마침내는 도쿄에서 아이돌로 데뷔하게 된다.

원래 NHK TV소설은 평일 오전 8시 매회 15분만 방송하는데, 주로 1980년대 이전 일본을 배경으로 한 가족드라마를 방영해 중장년층을 공략한다. 하지만 천재 작가로 불리는 구도 간쿠로는 전후 일본을 살아온 세 세대의 이야기를 엮어 전 연령층에 파고드는 솜씨를 보여준다.

전후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녀가 돼 억척스레 돈을 벌었던 할머니 나쓰, 버블경제 호황기일 때 아이돌이 되겠다며 집을 박차고 나간 엄마 하루코, 그리고 긴 경기침체 끝에 꿈도 희망도 없어진 세대를 상징하는 딸 아키까지. 3대의 꿈은 아키를 통해 꽃을 피운다. 아키는 할머니의 대를 잇는 한편으로 엄마가 이루지 못한 아이돌의 꿈까지 이루며 밝고 희망찬 성격으로 바뀐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또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세 세대가 힘을 합쳐 조그만 어촌마을이 겪고 있던 경기침체와 무기력증을 떨치도록 한다는 이야기는 일본 사회 전체를 위한 동화로 읽힌다.

드라마는 이 동화의 ‘슈퍼히어로’로 여자 아이돌을 내세워 일본의 아이돌 문화사를 조망하는 재미도 더한다. 당시 가수의 실제 무대 영상을 드라마에 삽입해 엄마 하루코를 도쿄로 가도록 만들었던 1980년대 들썩거리는 분위기를 전한다. 하루코 역을 맡은 고이즈미 교코는 실제로 1980년대 아이돌 가수로 데뷔한 배우다. 극중 아키가 스카우트된 그룹 ‘GMT 47’은 일본 아이돌 그룹의 정점으로 불리는 ‘AKB 48’의 패러디다.

2008년 봄에서 출발한 아마짱의 시간적 배경은 이제 2010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반을 지났으니 드라마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해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의 배경인 이와테 현은 대지진 당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곳 중 하나. 수많은 난관을 거쳐 성장해온 슈퍼히어로, 해녀 아이돌 아키는 그토록 좋아하던 고향 마을이 참혹하게 망가졌을 때도 ‘꿈과 희망을 준다’는 아이돌의 직분을 수행해낼 수 있을까.

아직 답은 알 수 없지만 ‘AKB 48’의 현재 모습에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 멤버 간 서열을 정하는 총선거의 TV 생중계 시청률은 30%를 넘어섰고 각종 브랜드는 멤버들의 명성에 기대 협업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같은 주요 일간지도 멤버들의 기고를 실으며 이 대열에 참여했다. 마치 ‘AKB 48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듯한 지금 일본의 모습이 드라마 아마짱과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마짱#해녀#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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