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잠재적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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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미드 ‘한니발’과 ‘덱스터’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음미하는 한니발. 요리의 주재료는 동물의 내장으로,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인 장면과 다를바가 없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미국 NBC 홈페이지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음미하는 한니발. 요리의 주재료는 동물의 내장으로,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인 장면과 다를바가 없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미국 NBC 홈페이지
보스턴 폭탄 테러와 시기가 겹친 네 번째 에피소드는 아예 미국에서 결방됐다. 미국 유타 주는 잔혹하다는 이유로 시즌 도중 방영을 중단했다.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국 드라마 ‘한니발’ 얘기다.

렉터 박사는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해 이미 고전적 연쇄살인범 캐릭터로 꼽힌다. 드라마는 한니발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붙잡은 연방수사국(FBI)의 프로파일러 윌 그레이엄(휴 댄시)과 한니발(마스 미켈센)이 처음 만났던 시절의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원작 소설로 따지면 ‘레드 드래건’의 앞 이야기에 해당한다.

드라마에는 다종다양한 시체들이 등장한다. 그냥 총 맞고 칼에 찔리는 것은 약과다. 사슴뿔에 꿰인 채 오두막에 걸린 시체부터 토템처럼 탑을 쌓아올리거나 실제 연주가 가능한 악기로 변형된 시체까지 예술작품처럼 치밀하게 완성된 시체들이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은 매번 한니발이 심장이나 췌장, 간 같은 내장으로 요리하는 모습과 겹쳐지며 잔혹함을 더한다.

한니발을 다른 연쇄살인범 영화나 드라마와 구분 짓는 또 다른 요소는 수사관 윌이다. 윌은 병적일 정도의 공감력과 상상력을 지닌 인물. 범죄 현장을 보며 스스로 연쇄살인범으로 감정이입해 행동을 예측해 낸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윌은 점점 수사관으로서의 현실과 연쇄살인범으로서의 상상을 구분할 수 없어지고 결국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 지극히 정상이던 그가 한니발의 유도에 따라 연쇄살인범이 돼 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셈이다.

올해 8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하는 연쇄살인범 드라마 ‘덱스터’는 이와 정반대로 연쇄살인범 덱스터가 인간 덱스터로 변해 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덱스터는 어릴 적 충격으로 감정이 거세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드라마는 감정 표현이 서툴고 사람과의 교감이 낯선, 어린애 같은 덱스터가 자신의 살인 충동을 다스리며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돼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10여 년이 지나 착해진 덱스터는 가고, 구제불능의 살인마 한니발이 왔다. 덱스터가 그나마 ‘잔혹한 살인범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으로 시청자들의 도덕률을 지켜 줬다면, 한니발은 말 그대로 자기 멋대로 살인하고 식인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연쇄살인범의 내면을 시청자에게 보여 준 덱스터를 넘어서 시청자 스스로가 연쇄살인범이 되는 유사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덱스터에서 한니발까지, 이런 진화는 결국 ‘더 센 것’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 섬뜩해진다. 브라운관을 통해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죽이며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모두 잠재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인 것은 아닐까. 정상인보다 더 정상인 같은, 우아하고 지적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그렇게 묻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사이코패스#한니발#렉터 박사#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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