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H]서세원 “난 흘러간 복서…링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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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12일 07시 00분


첫 회가 방송된 뒤 서세원은 주위에서 “향수를 느꼈다”는 반응을 많이 접했다. 이제 목표는 그의 대표작인 ‘서세원 쇼’를 뛰어넘는 일이다. 사진제공|채널A
첫 회가 방송된 뒤 서세원은 주위에서 “향수를 느꼈다”는 반응을 많이 접했다. 이제 목표는 그의 대표작인 ‘서세원 쇼’를 뛰어넘는 일이다. 사진제공|채널A
‘국민 MC’ 유재석을 탄생시킨 90년대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 그가 돌아왔다

■ 채널A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가지 연구소’

방송 중단 6년…억울하고 고단했던 나날
28년 번 돈 다 날리고 세월은 백발만 남겨

채널A 이영돈 상무 말에 용기…복귀 결심

내민 손 흔쾌히 잡은 후배 남희석 고마워

첫 방송 이후 ‘향수 느꼈다’ 격려 쏟아져
기다려준 팬들 위해 최고의 쇼 보여줄 것

개그맨 출신 방송인 서세원(57). 한눈에 ‘트레이드마크’인 입 모양부터 눈길이 갔다.

어린 시절 봤던 TV 속 그는 아랫입술을 윗니 아래로 넣고 한껏 콧소리를 섞으며 ‘산 넘고∼ 물 건너∼ 바다건너 셔!셔!셔!’라며 흥겹게 노래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KBS 2TV ‘서세원쇼’에서는 게스트의 이야기에 배꼽을 잡으며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웃기도 했다.

숱한 유행어는 물론 ‘서세원쇼’라는 당대 ‘히트작’을 통해 그는 훗날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개그맨 출신들이 예능프로그램의 전문 MC로 활동하는 발판의 계기도 마련했다. 아직 ‘메뚜기’로만 불렸던 무명 개그맨 유재석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해준 것도 ‘서세원쇼’였다.

그렇게 개그와 토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세원이 돌아왔다. ‘서세원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2006년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서세원’ 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거는 많은 이들의 요청에 다시 한 번 ‘입’을 풀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한 입담과 ‘개그본능’도 여전하다. 다만 뒷목을 덮던 단발머리는 짧은 스포츠머리로 변했고, 흰 눈처럼 백발이 내려 앉아 성성하다.

“정직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나야지, 까맣게 머리를 염색하고 사기 치면 안 된다. 나이를 속이고 염색을 한다고 해서 젊어지겠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거다.”

그의 말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방송을 중단한 6년의 시간 속에서 겪었을 고단함도 엿보였다.

“억울한 점도 많았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손실을 많이 봤다. 일을 시작하고 28년 동안 번 돈이 제로(0)가 되었으니까. 솔직히 지금도 힘들긴 하지만, 손놓고 있을 수만 없다. 이제 일어나야지.”

사실 서세원은 지난해부터 복귀를 놓고 망설였다. 그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하자고 제의해 왔다. 그때마다 그는 망설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같이 하자고 해서 무턱대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방송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방송만 했던 사람이다. 눈뜨면 여의도에 가고, 끝나면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사업을 시작하고, 또 돈을 잃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일이 일어나니 짜증이 나더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방송을 할 때는 매일 똑같은 사람 만나고, 똑같은 일을 하니 지겨웠지만 어느 순간 일이 끊겼다. 일할 때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사진제공|채널A
사진제공|채널A

방송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있다 올해 초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의 진행자인 이영돈 상무와 전 ‘이소라의 프러포즈’ 연출자인 KBS PD 출신의 박스미디어 박해선 대표가 찾아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얼떨떨했다. 만나기로 한 날도 잊어버렸다. 그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제작사인 박스미디어 박 대표가 ‘한 번 다시 해보자’고 얘기하더라. 또 ‘지상파 방송에 미련 갖지 말라’면서. 솔직히 종편 채널이 지상파에 비해 시청률이 낮아 고민도 없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40%는 기본, 50%도 찍었으니까. 이영돈 상무가 적극적이라서 의외였다. 챔피언(이영돈) 복서가 흘러간 복서(서세원)한테 ‘다시 타이틀을 딸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서세원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들 ‘서세원쇼’ 같은 1인 토크쇼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후배 개그맨 남희석과 손잡았다.

“자신이 없었다. 방송을 오래 쉬어 감도 익혀야 하고. 무조건 ‘혼자하겠다’는 고집은 없었다. 절친한 후배 남희석에게 부탁했다. 내 이미지 때문에 같이 안 한다고 할 수 있는데, 흔쾌히 ‘오케이’해준 희석이가 고맙다. 방송하고 나서 그에게 많이 배웠다. 솔직히 희석이를 보며 많이 놀랐다. 하도 실력이 늘어서. 하하! 정말 많이 컸더라. 과거 ‘개그콘서트’의 심사위원이었는데, 처음 (김)병만을 봤다. 내가 점수를 엄청 줬는데, 병만이는 모를 거다. 지금 잘 하는 거 보니 내가 더 기쁘다.”

서세원은 방송 2회 만에 ‘감’을 정확하게 찾았다. 거기에 체력까지 적절하게 안배해가며 보통 6시간이 넘는 녹화 시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첫 방송은 조금 긴장했다. 그때 일정이 너무 많아 잠을 못자서 피곤하기도 했고. 방송 후 주위에서 ‘향수를 느꼈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나이든 사람들은 ‘늙다리가 오니까 좋다’고 하는데, 일일이 답장을 다 보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서세원의 활약이 돋보이자 타 방송사의 출연 제의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작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거부터 잘 하려고 한다. 그동안 기다려주고 성원해준 팬들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이다 보니까 실수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이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실수도 관대하게 봐주셨으면 한다. 뒤늦게 방송을 시작했지만, ‘서세원쇼’ 이상의 프로그램을 약속한다. 최고의 쇼를 보여드리겠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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