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 위해 진실 말하겠다” 장윤정 이모글 전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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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9일 1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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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eNews' 방송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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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이모글

장윤정 이모글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장윤정의 이모 전 모씨는 9일 오전 방송된 tvN 'eNEWS-기자vs기자, 특종의 재구성'에 출연해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은 100% 사실이다. 윤정이 엄마는 딸을 고생시켜놓고 윤정이가 4학년 때 집을 나갔다. 형부가 엄마노릇 다했다"고 주장했다.
또 "장윤정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밤무대에서 노래해 번 돈으로 장윤정 엄마는 화투를 쳤다. 내 두눈으로 봤다. 언니도 엄마라면 이러면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윤정 이모는 "장윤정과 친밀하게 지냈지만 얼마 전 연락이 끊겼다"라며 "장윤정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폭로글을 올렸다"라고 덧붙였다.

장윤정 이모는 얼마 전 장윤정의 안티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썼다.장윤정 엄마를 옹호하는 글의 댓글 형식이었다.

전 씨는 "윤정이 이모"라고 스스로를 밝힌 뒤, 장윤정의 어머니 및 장윤정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과거 이야기라며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글은 '장윤정 이모글'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상에 퍼졌다.

장윤정 이모는 이 글에서 "윤정이가 이제 톱스타가 되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려나 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이냐"라며 "언니는 육씨이고 나는 아버지가 달라 성이 전씨다"라고 전했다.

장윤정 이모글에는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간호사로 일했다는데,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버스 안내양으로 일했다", "아버지 장례 때 들어온 부조금도 언니가 가져갔고, 언니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 오빠와 나를 잘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유언도 저버렸다", "엄마 한달 월급이 7만 5000원이었는데, 엄마가 언니한테 윤정이 출산비로 13만원을 내주셨다", "언니 때문에 형부는 형제 지간에 남남으로 살고 있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장윤정 이모글에는 또 "언니는 돈이 없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형부가 교통사고로 응급수술을 하게 됐다며 돈을 빌려갔다. 그때부터 시작한 화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엄마가 대출을 받아 차려준 아귀찜 가게도 화투 때문에 그만뒀다"라며 "윤정이는 9살 때 꼬마 신동이라며 밤무대를 뛰게 됐다. 윤정이가 11살 때 돈번다는 핑계를 집을 나갔다. 그때부터 형부가 밤새워 일하고 밥해서 윤정이와 경영이를 학교에 보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장윤정의 이모는 또 "어렸을 때부터 윤정이 팔아 돈 벌더니 10년 동안 실컷 썼다. 지금에 와서 돈줄 끊어지니 난리굿이 난 것"이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장윤정 이모글, 너무 혼란스럽다", "장윤정 이모글, 확실한건 장윤정이 안타깝다는 것", "장윤정 이모글, 도경완 어떡하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하는 장윤정 이모글 전문.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유년시절부터 고생하며 자란 우리 윤정이가 톱스타가 되어 이제는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려나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 글을 쓰는 저는 윤정이 이모입니다.

엄마가 재혼을 하셔서 남매를 낳으셨습니다. 언니는 육씨이고 나는 아버지가 틀린 경우로 성이 전씨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대로 윤정이를 위해서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낳기 전 3남매를 낳으시고, 이혼을 하셨습니다. 언니는 엄마와 9년을 떨어져 살다 오빠가 신문 기사에 나온 걸 보고 경기도 평택 안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 나이 7살이었습니다. 갑자기 없던 언니가 생기고 오빠들이 생겼지만 어린 나이로써는 마냥 좋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일줄은 아무도 예측을 못했습니다. 첫번째 찾아온 큰오빠, 그다음 언니, 그리고 흥중이오빠까지…

엄마를 만난 언니는 서울에서 평택으로 직장을 옮겼고 버스안내양으로 일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간호사로 일을 했다는데…입만 열면 거짓말이니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은 희망사항이었겠지요. 국민학교 졸업을 했으며 언니 또한 남의 집 식모살이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귀에 딱지가 앉질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런걸 알기에 엄마는 언니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줬습니다. 그때는 우리 남매가 너무 어렸기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10만 원짜리 전세를 살았는데<38년전> 그 보증금도 가져갔으며 대신 월세를 내준다고 했지만…엄마가 행상으로 장사해서 월세돈을 내면서 앞 못 보는 아버지와 걷지 못하는 오빠랑 나랑 쉴 때마다 오는 언니와 한 방에서 살게 됐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례 때 들어온 부조금마저 언니가 가져갔음을 커서 알게되었답니다. 그 금액도 십만원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언니한테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참고로 우리 오빠는 4대 소아마비 1급 장애입니다. 우리 남매를 잘 부탁하노라구요. 하지만 언니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그렇게 살던중 주위 지인 분이 엄마가 너무 고생하시는걸 잘 아시기에 재혼을 하라며 안중 옥길리라는 시골에 정미소 하시는 분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제 나이 11살이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분께서 우리 남매만 있는 줄 알고 좋아하셨는데, 언니와 흥중이 오빠까지 그 집에 머물게 되면서 쫓겨났습니다.

그분께서 엄마한테 금가락지 다섯 돈을 해주셨는데 안주면 나무에 윤정이 기저귀에 목 매달고 죽는다 해서 반지까지 빼줬습니다.

그때 윤정이가 14개월 됐을 때였습니다. 언니는 형부와 살기 싫다면서 강화운수에 또 버스안내양으로 일을 잠깐 했습니다.

윤정이는 엄마가 봐주셨구요. 태어날 때부터 윤정이는 엄마가 안중 현대의원에서 정월 초하룻날 받으셨고, 제가 미역국을 끓여 병원으로 배달을 해줬으며 출산비도 엄마가 13만 원을 내주셨습니다. 참고로 엄마 한 달 월급이 7만 5000원이었습니다.

그런 돈을 흥중이 오빠가 냈다는데 기가 막힙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경기도 오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언니는 형부 집인 충북 충주 금가면 월상리에서 형부네 재산 다 팔아서 언니네 친아빠한테 갖다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항상 엄마가 사돈댁에 염치가 없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어린 나이에 충주까지 윤정이 보러 방학 때 기차타고 내려갔으니 지금 생각하니 너무 철부지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형부네 두 분 어르신들 돌아가셨을 때 종갓집 맏며느리가 참석도 안했습니다. 오죽하겠습니까? 형부가 7남매중 맏이셨는데…며느리가 재산 다 말아먹었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형부는 어린 두 남매가 있기에 참고 사셨을 겁니다. 지금도 형부는 언니 때문에 형제 지간에 연락없이 남남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 언니 때문인데…

지금도 물어보심 뭔소리냐구 뻔뻔하게 거짓말할 겁니다. 엄마가 충주시골 가서 데려올려고 했을 때 엄마 머리채 다 뜯고 ¤려서 사돈 삼촌이 말렸다고 들었습니다.

언니는 성격이 매우 이상했습니다. 오빠는 몸이 불편한 관계로 뭔 일이 있음 저를 심하게 때렸습니다. 때리고 나면 옷사주고 맛있는 거 사주면 어린 나이에 좋아했으니…

자세히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중간에 형부가 서울 신우운수라는 곳에서 버스 정비사로 일하시다 버스미션이 떨어져서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사로로 심한 일을 못하시기에…많이 쉬셨습니다. 윤정이 5살 때 엄마가 공장짓는 함바에서 일을 하시다가 식사하러 오신 택시회사 사장님께 부탁해서 오산 화홍상사라는 택시 회사에 정비사로 취업을 하게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오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2년 후 윤정이가 오산 꽃동네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택시 회사가 언니네 꺼라면서 학부모들 중 화투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고스톱을 치게 되었습니다.

윤정이가 학교 취학하면서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가끔씩 외박을 하며 화투를 쳤습니다. 돈이 없으니 동네 분들께 형부가 교통사고나서 응급수술을 하게 됐다며 돈을 빌려갔고 그 돈은 엄마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언니의 도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윤정이는 9세 때 노래를 하게 된 계기로 초등학교 3학년 때 평택에 있는 골든벨스탠드바에서 꼬마 신동이라고 밤 무대를 뛰게 됩니다.

입소문으로 서울 천호동 둥근달 캬바레까지 하루 3~5군데를 어린아이가 다녔으며 그 돈으로 화투를 했으니…

참 엄마가 정신차리고 살라고 엄마가 운영하시던 분식집을 친척 도움으로 엄마가 대출을 받아서 음식 솜씨가 좋았던 언니가 아귀찜 가게 한다고 해서 시작하던중 화투 때문에 그만두게 됐고, 그 가게는 흥수 오빠네가 닭갈비집을 한다 했으나 솜씨가 없던 관계로 문을 닫게 되어 그 대출받은 돈은 몸불편한 오빠가 몇년에 걸쳐 다 갚았습니다. 언니네 남매는 엄마를 남들한테 너무 나쁘게 말해서 언니가 아는 사람들은 엄마한테 인사도 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중 윤정이 11살 때 언니는 돈 번다는 핑계로 집을 나갔습니다. 물론 돈 벌려고 나갔겠지요. 그때부터 형부가 윤정이와 경영이를 밤새 일하고 밥해서 학교를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수원으로 다닌 윤정이를 위해 도시락 2개씩 싸주며 고생한 우리 불쌍한 형부…오죽했음 엄마가 뜸물통에 빠져 죽으라 했으니 말 다한 거지요.

엄마가 오산 노인병원에서 7년을 병상 생활하면서 단 한번도 윤정이는 물론이고 경영이 또한 못 봤으니까요.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는 게 맞더라구요. 어찌 그 고생한 엄마를 자기 친엄마 아니라고 하고 언니가 윤정이 스타 만들었다고 큰소리 뻥뻥치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엄마 돌아가신지 4년이 지났습니다. 그토록 이뻐하던 윤정이를 못보고 침대에 누워 노래자랑에 나오는 윤정이를 그리다 운명하셨습니다. 언니가 친엄마 아니라 했을 때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기자회견을 할려고 한다고 하니까 흥중이 오빠를 병원으로 보냈더라구요. 참으라 해서 참았지만, 그때 진실을 밝힐걸 후회스럽습니다.

일명 저는 핵폭탄이기에 윤정이 곁에 오지를 못하게 애들한테 완전 세뇌 교육을 시켰더라구요.

지금의 일은 자업자득입니다. 진실은 꼭 밝혀지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어린 윤정이 팔아 돈 벌더니 10년 동안 실컷 썼지요. 지금에 와서 돈줄이 끊어지니 난리굿이 난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제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참, 윤정이도 얼마 전까지 맞은 게 사실입니다. 젊었을 때는 형부 물어 뜯고 할퀴고 엄청 심했습니다. 형부 몸에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겁니다. 아마도 형부가 입을 여시면 가관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제가 알기에 불쌍한 윤정이를 위해 보냅니다.

장윤정 이모글 사진=tvn 'eNews' 방송 화면 캡처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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