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혼이 뒤바뀐 나여옥(김정은)과 고수남(신현준)은 예전대로 돌아가기 위해 용하다는 스님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KBS 화면 캡처 (아래) 길라임(하지원)과 김주원(현빈)은 서로 몸이 바뀐 뒤 예전에는 잘 몰랐던 상대방에 대해 서로 깊이 알아가기 시작한다. SBS 화면 캡처
“우리 바뀐 거 맞아? 내 몸속에 당신 맞아? 어떻게 이런 일이….”
부부는 서로를 보고 경악한다.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나온 뒤 교통사고를 당한 부부의 영혼이 뒤바뀐 것. 아내 나여옥(김정은)은 남편과 바람난 불륜녀를 만나고, 남편 고수남(신현준)은 고통스러운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1일 첫 회가 방송된 KBS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는 영혼이 바뀐 부부의 코믹한 일상을 다루며 10% 중반대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른바 ‘영혼 체인지’를 다룬 작품들은 영화가 먼저다. 딸과 엄마의 영혼이 뒤바뀌는 내용의 일본 영화 ‘비밀’(1999년), 공부 못하는 남자와 모범생 여자의 영혼이 바뀐다는 내용의 한국 영화 ‘체인지’(1997년)가 대표적이다. 드라마로는 미혼녀의 영혼이 불륜 상대의 아내와 뒤바뀐다는 설정의 SBS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현빈 신드롬을 일으킨 ‘시크릿가든’이 각각 평균 시청률 25%와 30%를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했다.
비교적 높은 시청률에도 ‘영혼 체인지’ 드라마가 많지 않은 것은 판타지를 낯설거나 부담스럽게 느끼는 시청자들의 정서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가 최근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비결을 짚어봤다.
○ 유치하지 않은 코믹함
영혼 체인지 드라마에서 유치함은 금물이다.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판타지의 유치함을 희석하기 위해 영혼 체인지는 세 단계로 발전해 왔다. 1단계는 동성 간, 2단계는 남녀 간, 3단계는 권력과 지위가 바뀌는 체인지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판타지적 요소는 덜 유치해 보인다.
영혼 체인지는 단순한 내러티브지만 기본적 얼개 위에 권력과 지위를 덧붙임으로써 흥미를 배가시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크릿가든’의 경우 영혼이 뒤바뀐 배고픈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과 백만장자 김주원(현빈)은 각자의 권력과 지위가 반전되며 스토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울랄라부부’도 전업주부 나여옥과 호텔 지배인 고수남의 사회적 역할이 바뀐 뒤 좌충우돌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두고 “‘부부클리닉’의 코믹판타지 버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금기 위반의 코드
문화 콘텐츠에서 가장 매력적인 코드의 하나는 역설적으로 금기 위반이다. 남녀가 뒤바뀐 영혼 체인지 드라마에선 속옷과 화장실, 탈의실 문제가 항상 등장한다. 시청자의 관음증과 궁금증을 겨냥한 포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이런 설정에서는) 서로 배제된 영역에 침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시킨다”며 “영혼 체인지를 통해 금기를 깰 때 시청자들이 긴장과 스릴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영혼 체인지 뒤 영혼이 제 위치로 되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복선 구조를 짚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 완벽한 ‘입장 바꾸기 게임’
오해와 반목이 많은 관계일수록 영혼이 바뀌면 매력적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녀, 불륜녀와 아내의 영혼 바꾸기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싸우다 답답한 나머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연인이나 부부들에겐 영혼 체인지 드라마는 상상이 현실화된 공간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혼이 바뀜으로써 타인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게 가장 완벽한 형태의 소통”이라며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드라마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은 영혼 체인지를 통해 두 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7월 종영한 KBS 드라마 ‘빅’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영혼이 바뀐 두 사람 간의 소통이 아닌, 30세 남성의 몸 안에 있는 18세 남성의 성장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다른 ‘영혼 체인지’ 드라마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빅’에 이어 ‘울랄라부부’를 제작하고 있는 황의경 CP는 “빅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면 울랄라부부는 실존적, 실생활적”이라며 “방송사 내부 심의에서 비판을 받아도 ‘불륜 설정’을 넣는 것은 (바뀐 상대를 두고) 갈등한다는 상황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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