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범죄와의 전쟁’, 조폭 나온다고 다 조폭 미화는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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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1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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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폭영화야?”

그런 줄 알았다. 최민식과 하정우를 중심으로 멀끔하게 정장 빼입은 남자들이 당당하게 골목을 메우고 있는 포스터가 그렇다.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일 개봉, 윤종빈 감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자신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간 꼰대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노태우 대통령이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1990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불과 10년 전 부산의 비리 세관원이던 최익현(최민식)이 어떻게 부산의 조폭들과 연결됐는지, 또 그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말이다.

최익현은 직장에서 밀려나면서, 우연히 얻은 마약을 조직에 몰래 팔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부산 최대 조직의 수장인 최형배(하정우)와 인연을 맺는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다방 레지의 가슴을 훔쳐보던 최익현은 최형배의 후광을 업고,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로 거듭난다. 술집에서 과거 상사를 마주한 최익현이 최형배의 부하 박창우(김성균)의 도움으로 그를 때려눕히는 데, 최익현은 이때부터 권력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를 기점으로 최익현은 종횡 무진한다. 그는 말 그대로 ‘꼰대’의 전형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 최고이고, 그 중 으뜸은 혈연이다.

위기의 상황에선 ‘경주 최씨 충렬공파’라는 혈연 카드를 내세우고, 그가 유일하게 믿고 부리는 이도 매제 김서방(마동석) 정도. 이도 저도 안 되면 최익현은 노선 변경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10촌 부장검사에게 금 두꺼비를 건네며 수감된 최형배를 풀어주고, 안기부에 줄을 대 카지노 운영권을 따낸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장과 명품 시계를 고수하는 보스 최형배(하정우)가 있고, 그에게 넘버투 콤플렉스를 느끼는 다른 조직의 두목 김판호(조진웅)이 있다. 하지만 진짜 ‘나쁜놈’은 최익현이다. 줄기차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최익현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짠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하필! 최익현을 만나 “내 또 속는다”며 매번 속기만 하는 건달들은 더 불쌍하다.)

“일본에 히로뽕을 내다파는 게 애국”이라는 최익현의 궤변이 웃기면서도 어쩐지 서글픈 이유는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그의 가족 때문이다.

최익현은 줄을 갈아타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가족이 있어 계속 ‘반달’로 살아간다. 깨진 거울에 비쳐진 모습처럼 자신의 자아는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음을 인식도 못한 채. 특히 아침식사 시간, 영어 단어를 얼마나 외웠는지 직접 점검할 만큼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은 그의 희망이다.

극중 최익현이 늘 지니고 다니는 총알 없는 권총. 이것이 가족을 위해 정글 같은 세상을 허세와 세치의 혀로 버티는 ‘슬픈 가장’ 최익현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주는 장치이다. 총알 없는 권총이 소용없듯, 최익현 역시 처세술과 화술을 빼면 별 볼 일 없는 중년 남성이니까.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등에서 세밀한 관찰력을 보여준 윤종빈 감독은 이번에도 한 시대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냈다. 윤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고 정의하며 “일방적 지시로 이뤄진 표면적 관계였던 아버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밖에서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윤 감독은 오히려 상상력이 개입할 수 없어 더 어려운 1980년대를 세밀하게 재현해냈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간 아버지들을 연민의 눈으로 담아냈다. “대부님”이라는 부름에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 최익현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4년 전, 윤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를 떠올려 보자. 포스터만 보면 화려한 호스트 세계의 이야기 같다. 하지만 결국 돈에 좌우되는 시대에 대한 ‘다큐’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범죄와의 전쟁’은 ‘느낌 있는’ 갱스터 영화지만, 그 이면에는 로비스트, 조폭, 사업가, 검사 등이 뒤엉켜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진흙탕 같은 ‘나쁜놈들’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오랜 연기 내공의 최민식이 있어 가능했다. 볼록 나온 배와 푸짐한 인상 등 외적인 변화를 포함해 그는 어디선가 만날 법한, 이리저리 사람을 구워삶는 능구렁이 최익현으로 변했다. 하정우는 ‘의리와 폼’을 최우선시 하는 주먹 넘버원 최형배로 분해 적절한 등장으로 ‘꼰대’의 활약에 빛을 더했다.

추가포인트.
영화 ‘황해’에서 하정우가 죽인 곽도원이 이번에는 ‘지옥에서 온 검사’로 등장해 하정우를 쫓는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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