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익스펜더블’ 똥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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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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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폭탄으론 죽여도 교수형은 안한다?과대망상…딱 5분 등장하며 “내 이름 알것없어”개똥철학…“고통을 경험해야 여자의 의미 알지”‘쿨’강박증…알지도 못하는 여자 구하러 적지로

1980년대 횡행하던 ‘마초+영웅+액션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 ‘익스펜더블’. 이 영화엔 자기도취에 빠진 마초들이 즐비하다. 사진 제공 영화공간
1980년대 횡행하던 ‘마초+영웅+액션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 ‘익스펜더블’. 이 영화엔 자기도취에 빠진 마초들이 즐비하다. 사진 제공 영화공간
실베스터 스탤론이 각본 감독 주연을 죄다 혼자서 하고, 여기에 제이슨 스테이섬, 돌프 룬드그렌, 미키 루크, 리롄제(李連杰), 브루스 윌리스, 랜디 커투어(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같은 배우들이 떼로 출연한다. 영화 ‘익스펜더블’의 출연진 이름을 듣는 순간 남성 호르몬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아무 생각 없는 수컷 액션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맞다. 이 영화는 진짜 무뇌(無腦)적이고 마초적인 ‘칼질+총질+싸움질’ 영화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익스펜더블이 ‘시대착오적’이란 외마디로 평가받을 순 없다고도 생각한다. 이 영화엔 ‘람보’와 ‘코만도’로 상징화되는 198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이 세계시장을 휘어잡았던 유전자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 유전자는 바로 ‘똥폼의 미학’이다. 개똥철학을 대사로 주고받으면서 그걸 남자답다고 착각하고, 적군 수십 수백 명은 파리 목숨처럼 죽이면서 오로지 사랑하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신을 최후의 로맨티시스트인 양 여기며 자기도취에 빠지는 불가해한 미학이 이 영화엔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익스펜더블 곳곳에 숨어있는 똥폼의 미학을 들춰내어 볼까.

먼저 이 영화에 담긴 불가사의한 ‘직업윤리’에 대해 살펴보자. 이 용병들은 돈만 주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목표 인물을 가루로 만들겠다는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멤버 중 젠슨(돌프 룬드그렌)이 작전 도중 흥이 돋아 적군 한 놈을 목매달겠다고 하자,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젠슨을 말린다. 스탤론은 젠슨에게 반대하면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날린다. “이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야. 놓아줘!”

머리통은 단박에 날리고 목은 단숨에 따도, 교수(絞首)는 ‘우리 방식’이 아니라니! 이런 자가당착적이고도 저렴한 휴머니즘이야말로 80년대 마초 액션영화 팬들로 하여금 ‘어쩜 저리도 멋질 수가…’ 하고 감탄을 자아내도록 만든 키포인트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 속 수컷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이슨 스테이섬은 일언반구 없이 여자친구를 떠난 뒤 오밤중에 제멋대로 찾아온다. 그러고는 “우리가 사귀는 1년 반 동안 난 당신이 뭘 하는지도 몰랐어”라며 울부짖는 애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무슨 문제지? 내가 여기 있을 때 당신과 함께라면 그게 전부가 아닐까….”

자기는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영웅이니 만나는 자체로 감지덕지하란 얘긴가? 게다가 이자는 작전지에서 돌연 차를 세운 뒤 어딘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알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다. 동행한 여성이 “어디 가세요” 하고 묻자 뒤도 안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답한다. “어디든! 당신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난 단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오.”

아, 짜증나. 도대체 뭔 뜻이란 말인가. 선문답 같은 얘기나 일삼는 이기적인 수컷들의 모습이야말로 80년대 마초영화의 DNA였으니…. 이 영화에 딱 5분 등장하는 브루스 윌리스(심지어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딱 1분 45초 나온다)는 사건 의뢰를 위해 만난 용병대장 스탤론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 진짜 이름이 뭔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 필요 없소. 우리가 이런 좋은 곳(교회)에서 만났으니까, 그냥 내 이름을 ‘처치(church·교회)’라 불러주시오.” 어이가 없다. 누가 이름을 물어보기나 했냐고요.

이 영화에서 가공할 수준의 개똥철학을 남발하는 이는 미키 루크다. 과거 사랑했던 여인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사지(死地)에서 생환한 사건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삼아 우울하고 멋진 척한다. 이자는 “우리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여자의 의미를 깨닫게 돼. 고통을 받아야 알기 때문이지” 같은 알 수 없는 대사들을 날리는데, 머리 나쁜 스탤론이 “그게 무슨 뜻이지”라고 묻자 “그냥 믿음이야. 영혼이 담긴 믿음 말이지”라며 한층 더 알 수 없는 대사를 날린다.

다트 판에 칼 던져 꽂으면서 ‘형님’ ‘아우’의 온정을 나누는 괴이한 소통방식을 가진 이 마초들은 급기야 ‘난 너무 쿨해’라고 착각하는 ‘쿨가이 강박증’까지 드러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구출하려 적진으로 침투해 고군분투한 뒤 결국 그녀를 살려내고 만 스탤론. “다시 꼭 돌아오실 거죠”라며 애원하듯 묻는 그녀에게 이런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쿨’하게 돌아선다. “마음은 항상 여기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아니, 여성이 무슨 버스 정류장도 아니고…. 언제든 떠나도, 언제든 돌아와도 항상 그 자리에 돌처럼 서있는 존재란 말인가? 하긴, 이런 쿨가이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여자들과 이렇게 쿨하게 작별하지 않으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느냔 말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동영상=영화 익스펜더블 실베스터 스탤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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