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특례입학, 색깔론…‘고생한 아이’ 문근영의 변신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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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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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여동생' '유예소녀' 캐릭터, 성인 변신 발목 잡아
● 악역 선택 '장서희식' 변신으로 아역 이미지 탈피
● 사적 논란, '고생한 아이' 효과로 성인 연기자 변신에 도움


KBS2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인기다. 첫 회부터 15.8%(AGB닐슨) 시청률로 수목극 최강자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부턴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 8일 방송된 4회차에서 17.7%까지 올랐다. 곧 20%대 진입도 가능해 보인다.

'신데렐라 언니' 성공의 중심은, 역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문근영(23)으로 봐야한다. 만년 국민여동생일 줄 알았던 그녀가 시니컬하고 독기 있는 송은조 역을 맡아 큰 관심을 끌었다. 연기 변신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긍정적이자 언론도 연일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성인 변신 성공이자 기존 이미지 탈피 성공이라는 것이다.

어찌됐건 문근영으로선 가히 기사회생이라 할 수 있다. '장화, 홍련'(2003), '어린 신부'(2004), '댄서의 순정'(2005) 등 출연영화 3편을 연이어 성공시킨 '기적의 소녀'였지만, 이후부턴 확실히 내리막이었다.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는 대실패였다.

이듬해 성인연기자로 변신하겠다고 시도한 KTF 도시락 CF는 어색하다는 혹평만 뒤집어썼다. 1년을 쉬고 TV드라마로 컴백, SBS '바람의 화원'에 출연했지만 평균시청률 12.9%(AGB닐슨)에 그치는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또 1년 반을 쉬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악역을 맡은 문근영. 장서희가 그랬듯, 아역 출신 연기자의 악역 도전은 성인 이미지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되는 행보다. 사진제공 에이스토리
\'신데렐라 언니\'에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악역을 맡은 문근영. 장서희가 그랬듯, 아역 출신 연기자의 악역 도전은 성인 이미지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되는 행보다. 사진제공 에이스토리

▶ 아역에서 성인 변신 꾀한 문근영의 '몰락'

사실 문근영의 몰락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그건 아역배우 출신의 숙명과도 같다. 문근영은 13세 때 KBS2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어린 시절 역으로, 이듬해 KBS2 '명성황후'에서 이미연의 어린 시절 역으로 출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아역스타였다.

아역스타들은 좀처럼 성인스타로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아역배우와 성인배우는 요구되는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부터가 그렇다. 아역배우는 '아이다움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외모여야 한다. 큰 눈망울에 동그스름한 얼굴, 몽톡한 코에 작은 입,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이어야 한다.

이 같은 아역배우형 외모는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대로 남는다. 여전히 어리고 귀여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성인배우로서는 감점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시청자가 아무리 애써 봐도 온전한 성인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아이가 아이다워야 인기 있듯, 성인은 성인다워야 인기 있는 법이다. '롤리타 콤플렉스' 자극용으로 기획된 캐릭터를 제외하곤 다들 그렇다.

문근영은 그 중에서도 더 심각한 경우였다. '너무나' 아이 같은 외모였다. 거의 중성적으로 느껴질 정도. 그런 탓에 국민여동생 칭호가 빨리 붙었다. 거기다 기부천사 등의 별칭을 얻으며 '착한 아이' 이미지까지 뒤집어썼다. '착한 아이'는 아역배우로는 좋지만 '착한 아이'가 성장한 '착한 어른'은 성인여배우로서 매력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되레 그 반대가 더 유리하다.

더 큰 문제는 문근영 본인도 상당기간 '유예소녀'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초기 주연작들은 모두 그런 식이었다. 성인적인 외적 환경에 맞서 소녀성을 지켜내는 내용이었다.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은 결혼이라는 성인적 환경에 맞서 소녀성을 결국 지켜낸다.

'댄서의 순정'에서도 사교댄스 교습이라는 성인적 환경에서 여전히 소녀성을 지킨다.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역시 에이스급 호스트를 상대하면서도 소녀 적인 순수성을 유지한다. 심지어 문근영의 소녀성을 깨지 않기 위해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선 극중 키스신조차 편집됐다.

외모나 사생활 면에서 이미 성인 변신이 어려운 조건인데 작품에서 조차 계속 소녀 이미지를 고집하니 이미지는 석회질처럼 굳어버렸다. 변신을 시도하려 CF에서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줘도 잘 안 풀렸다. 다시 남장여자 역할로 '소년'다운 귀여움을 보여주려니 나이와도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지 자체에 사람들이 식상하고 말았다.
'국민여동생'이미지를 벗고 성인으로 변신하려 애쓴 문근영은 2007년 한 이동통신회사 CF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섹시 댄스를 추기도 했다. 낯선 문근영의 모습에 '어색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국민여동생'이미지를 벗고 성인으로 변신하려 애쓴 문근영은 2007년 한 이동통신회사 CF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섹시 댄스를 추기도 했다. 낯선 문근영의 모습에 '어색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 '장서희식 변신'으로 '착한 아이' 이미지에서 탈피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 '신데렐라 언니'보다 더 파격적인 변신을 하더라도 무시당하게 마련이다. 어린아이 얼굴에 짙은 화장을 입혀놓은 양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굳이 성인역할로 재기하려면 또 다른 아역스타 출신 장서희처럼 오랜 잠복기를 두고 아역 이미지는 물론 인지도까지 크게 떨어뜨린 뒤에야 가능해진다.

아역 이미지가 채 지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인 변신을 시도한 김민정, 이재은, 이민우 등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벌써 서른이 가까워도, 파격노출 등을 시도해도 이들은 여전히 아이인지 어른인지 애매하다.

장서희는 결국 30세가 돼서야 MBC '인어아가씨'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인어아가씨'와 '아내의 유혹' 속 캐릭터가 악역에서 볼 수 있었던 표독스러움을 표방했다는 점이 은조 캐릭터와 닮아 눈길을 끈다. 악역으로 '착한 아이' 이미지를 벗어난 장서희의 전략을 문근영도 효과적으로 채용한 셈이다.

그러나 문근영이 2년 만에 내놓은 '신데렐라 언니'가 '통하고 있는' 이변을 설명하려면 장서희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데렐라 언니'는 첫 회 충격효과 이후 시청률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단순히 일회성 쇼로 시청자들이 즐긴 게 아니라 문근영의 변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따지고 보면 비결은 있다. 미리 계획해 실행한 전략이 아니라서 눈치 채기 어려웠을 뿐이다. 문근영은 뜸한 작품 활동 사이사이 '아무 일도 안한 것'이 아니다. 그 사이 사실상 작품 활동보다 더 큰 화젯거리를 낳았다. 사적 논란들이다. 그것도 꽤나 굵직한 것들이다.

먼저 대학 입시 과정에서의 특혜 논란이 있었다. 이전까지 문근영은 늘 "수능 봐서 대학 가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착한 아이' 이미지에도 그게 맞았다. 그러나 문근영은 결국 특례 입학으로 성균관대에 진학했다. 자기추천 수시전형이었다. 공동 시험장도 아닌 단독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렀다. 그것도 연극영화과가 아닌 인문학부에 진학해 변칙 입학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한국인이 기득권층 특혜 행각 중 가장 민감히 여기는 것이 군복무 문제와 대학입학 문제다. 더군다나 문근영의 팬층은 그녀를 여동생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와 딸처럼 여기는 부모세대다. 둘 다 대학입학 문제에 촉각을 세운다. 이 사건이 수일동안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난 뒤, 문근영은 마침내 '안티 없는 연예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문근영에 도움이 됐다. 물론 당시 큰 이미지 타격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문근영의 '착한 아이' 이미지를 깨줬다. 막연한 판타지 여동생 역할에서 물러나자, 점차 문근영에 대한 대중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20대 여성이 됐다. 성인변신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됐다.

문근영은 이듬해인 2008년 가을 또 다른 논란을 겪었다. SBS '바람의 화원' 직후다. 당시 지만원 군사평론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문근영 관련 일부 기사를 '빨치산 선전용'이라 비판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문근영의 외조부인 류낙진은 6·25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1971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1990년이 돼서야 전향서를 제출했으며, 이후 19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다시 수감돼 1999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된 바 있다.

자신의 홈페이지 글이 도마에 오르자 지만원 평론가는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문양의 외조부가 빨치산이라는 말은 내가 먼저 한 게 아니다. 문양의 기부 기사를 보다가 외조부 류낙진씨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며 "당시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문양의 외조부가 통일 운동가다. 문양은 얼굴과 마음만 예쁜 게 아니라 명문가 출신이다'라는 기사를 쏟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빨치산을 명문가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안 삼는가"라며 "나에 대한 비난은 좌익세력에 의한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부 세력에 의해 '문근영 기부 논란'이라는 식으로 엉뚱하게 호도되고, 색깔론이라는 입장에서 일부 매체에 의해 대서특필됐다. 문근영의 이름이 종합지 사회면에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SBS '뉴스추적' 등 지상파 시사보도 프로그램 소재로까지 다뤄졌다. 또 곧 온 국민의 이슈가 됐다.
2005년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스포츠 댄스 선수로 열연한 문근영. 그는 영화 속에서 성인적 환경에서 소녀성을 지키는 역할을 주로 맡은 탓에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이 더 힘겨웠다. 사진제공 연합
2005년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스포츠 댄스 선수로 열연한 문근영. 그는 영화 속에서 성인적 환경에서 소녀성을 지키는 역할을 주로 맡은 탓에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이 더 힘겨웠다. 사진제공 연합

▶ '색깔론' 시비가 '고생한 사람 효과' 일으켜

이 정도의 사회적 논란, 그것도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 해당 인물 이미지는 당연히 달라진다. 문근영의 경우 더 극적이었다. '착한 아이'는 이미 내던져졌고, 더 이상 '아이'가 될 수도 없었다. 일본 가십전문 주간지 '프라이데이'는 이를 '고생한 사람 효과'라 칭했다. 일본 연예인 카고 아이 '사건'때 썼던 표현이다.

카고 아이 역시 12세 때 아이돌 그룹 모닝구무스메 멤버로 데뷔해, 어릴 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스무 살이 가까워지는 나이까지 10대 초반 같은 이미지에 머물렀다. 그러다 레스토랑에서의 '미성년 흡연' 장면이 '프라이데이'에 포착됐다. 이후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고 추가 사건들이 이어지자 그는 긴 잠적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이 흘러 다시 연예계로 컴백했을 때, 카고 아이는 전성기 때는 꿈도 못 꿨던 성인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정도 논란에 휩싸여 한바탕 미디어를 들끓게 하면, 대중은 그를 '고생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만큼 성숙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게끔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카고 아이는 어린 소녀 같은 동안이지만 대중은 이제 그 얼굴에서 각종 논란을 함께 읽게 됐고 더 이상 어린 시절 이미지를 겹쳐서 보지 않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공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방증이 바로 '신데렐라 언니'의 성공, 문근영에 쏟아지는 열화와 같은 대중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려 예전 같은 귀여운 이미지를 반복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이미 대중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자신만 옛 그대로 국민여동생인양 구는 꼴이 날 뻔했다. 문근영의 성인 변신은 필연적이었고, 정확한 시점에 제대로 시도됐다.

문근영과 '신데렐라 언니'의 성공은, 결국 대중심리의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정확히 꿰맞춰 일어난 현상으로 봐야한다. 논란, 그 중에서도 사회적 논란은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급성장시킬 수 있다는 효과, 그리스 신화 속 아카르난 일화가 연상되는 효과의 증명사례다. 하나의 완성된 성공모델로 인식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도 딱 여기까지다. 일단 성인으로 인식된 뒤 이런 논란은 액면 그대로논란일 뿐이다. 득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유사 논란이 또 일어날 경우 대중의 환멸감이 일기 쉽다. 앞서 언급한 카고 아이도 그렇다. 성인으로의 변신은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불륜 등 스캔들이 잇따랐다. 그러자 대중도 급작스레 환멸을 느끼고 있다. 문근영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자신이 자초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어찌됐든 더 이상의 논란은 가급적 피하려 애쓰는 편이 좋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라는 이야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 동영상 = 문근영 “진짜 국민 여동생은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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