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은 왜?] MC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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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17시 28분


코멘트
대학로에서 ‘토크 콘서트’ 여는 김제동
그는 왜 연예인과 대중들의 유별난 사랑을 받을까?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촌철살인과 따뜻한 화술로 인기 MC자리에 오른 김제동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촌철살인과 따뜻한 화술로 인기 MC자리에 오른 김제동


"자,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할 순서인데…. 1회는 배우 김선아씨 2회는 G.o.d의 김태우씨 3회는 유재석씨가 나왔습니다(관객들 와~). 그런데 27회 매번 이렇게 유명한 게스트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관객 웃음). 그래서 때론 제 고등학교 친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유명한 사람이지요, 우리 학교에서만…(관객 웃음). 때문에 관객들이 제 친구가 나올까봐 불안에 떨지요(웃음). 오늘 게스트는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나올 건데, 혹은 교가를 부르며 나올 수도 있습니다(웃음). 화내고 나가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분도 한 성질 합니다. 오늘은 바로 이분입니다"


12월9일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열린 '김제동 콘서트'의 게스트로는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1인자 다툼을 벌이고 있는 박명수가 등장했다.

예고되지 않은 게스트의 깜짝 등장으로 객석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박명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답게 토크쇼의 초반 분위기를 확실하게 매조지하고 자리를 떴다. 이날 주인공은 토크계의 재야(?)인사인 김제동(35)이었기 때문이다.

170여 석의 소극장에선 (과장 없이) 10초에 한번씩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관객과 MC의 거리는 불과 10여m. 관객들의 소곤거림도 즉각 MC의 귀에 포착되는 악조건이다. 그럼에도 김제동은 그런 잡음 하나 놓치지 않고 절묘하게 유머의 소재로 활용해 관객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해나갔다.

토크콘서트는 마치 1인 연극을 보는 것 같이 엄숙했고, 때론 1명의 유명스타를 놓고 170여명의 기자가 인터뷰 하는 듯이 진솔했다. 아니, 웃음이 끊이질 않는 한바탕 신명나는 마당극에 가까웠다.

공연 시작도 전에 전회 전석 매진

콘서트의 계절이다.

뮤지컬과 오페라 같은 대형 공연은 물론이고 대학로와 홍대 앞 소극장들로 연말대목에 달뜨긴 마찬가지다. 연말연초를 기분 좋게 마무리 하려는 연인들로 매표소는 장사진을 이루고 공연기획자들은 이 시기를 위해 거의 1년을 준비한다.

이 치열한 콘서트의 무한경쟁 속에서 도드라지는 공연이 있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토크콘서트'란다. 유명가수도 아니고 화려한 세트도 없는 1인 토크쇼를 누가 그 돈을 내고 보러 올까.

그간 개그맨이 출연한 토크 콘서트가 없지는 않았다. 고인이 된 김형곤씨나 '컬투'도 대학로 소극장을 통해 관객과 스킨쉽을 강화한 개그맨들이다. 그러나 말로만 채우는 1인 콘서트란 전례가 없다. 물론 연극에도 1인극이 있다지만 과연 누가 즉석에서 튀어나오는 신선한 '말'로 2시간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김제동은 국내에서 토크 콘서트가 가능한 유일한 재원에 가깝다.

김제동의 토크쇼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전회 전석이 매진돼 화제를 모았다.
김제동의 토크쇼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전회 전석이 매진돼 화제를 모았다.


석연찮은 이유로 KBS '스타골든벨'과 여타 방송국에서 퇴출된 김제동씨가 찾은 자리는 의외로 대학로의 소극장이었다.

이런 무대는 시청률 논란도 없고 방송전파를 탈 일도 없어서 타인의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게다가 자신의 웃음 코드를 좋아해주는 사람만 찾아오니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무대인 셈이다.

누군가를 이를 놓고 '연착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바탕 MC 김제동을 둘러싼 각종 '정치 논란'을 벗어나는 길은 작은 무대에서 진솔한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내용과 형식이 공개도 되기 전인 12월 초 낭보가 날아들었다.

김제동의 토크콘서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전회, 전석 매진됐다는 것. 아무리 200명이 채 안되는 27회 소극장 공연(약 4000석)이라지만 이례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방송에서 자주 지켜봐왔던 한 MC의 무대에 3만3000원을 내고 다시 그의 얘기를 경청하라는 것은 흔치 않은 모험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추가 공연이라도 생기기 전에는 그의 무대를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남은 표가 전혀 없어요"라고 토로하는 기획사 측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실제 예매 게시판은 취소된 표라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결국 관객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기획사가 조심스럽게 추가공연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토크쇼가 가능한 국내 유일의 재원

일단 '콘서트'라는 이름을 내걸다 보니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는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날'을 한 곡 부르는 것으로 콘서트를 시작했다. 물론 얌전하게 노래만 부르지는 않는다. MC 답게 관객의 취향을 묻는 대화형 방식을 고집한다.

"제 노래는 딱 두 가지입니다. 빠르고 슬픈 노래와 느리고 슬픈 노래."

관객들이 "느리고 슬픈 노래"를 요청하면 그는 능숙하게 "빠르고 슬픈 노래를 조금 느리게 부르면 바로 그게 바로 느리고 슬픈 노래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재빠르게 1절만을 부르고 기타를 살짝 저만치 밀어 놓는다. "에잇 꼴도 보기 싫은 기타~."

음악이나 게스트가 아닌 자신의 '화술'로 승부를 걸겠다는 얘기다.

그는 세태에 빌붙는 '폴리테이너'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는 '소셜테이너'다
그는 세태에 빌붙는 '폴리테이너'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는 '소셜테이너'다


콘서트의 취지와 이를 채울 컨텐츠부터 살짝은 진지한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의 상품화가 아닌 대화하고 싶은 누군가의 수다를 듣고 싶다는 욕구를 풀어주고 싶다." 웃음을 전제로 깔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훈이 되는 얘기를 관객들과 풀어나가겠다는 것. 실제 10초마다 터진 웃음 속에서도 그는 뚜렷한 메시지를 갖고 기승전결로 대화를 풀어냈다.

"자, 게스트도 가셨으니 이제 본격적인 입담을 풀어봅시다. 오늘의 주제는 '차별과 다양성'에 대한 얘깁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EBS에서 나온 '지식채널e' 3권에 등장한 '대부분이 우울했던 소년' 편을 낭독했다. '책과 신문과 가장 가까운 연예인'이란 그의 이미지에 걸맞은 진행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친구도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개성이 강했기에 집단으로 따돌림 받기도 했고요. 좋아하던 만화를 그리기를 좋아했고 결국 디즈니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눈을 그리지 않는데, 디즈니는 커다란 눈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디즈니를 떠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대로 만든 기괴한 영화 '비틀쥬스' '가위손' '배트맨'. 그가 바로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던 '팀 버튼입니다."

마치 자기 얘기를 하듯 팀버튼 감독의 일화를 들고 나온 데에서 "유머란 고정 관념에서 탈피라는 것이다"는 김제동식 유머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을 구분합니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야죠. 저는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다면(웃음), 왜 규정된 틀 속에서만 살아가야 합니까. 누가 그 규정을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객이 소곤거리자) 아, 당신이 만들었다고요?(웃음) 왜 180이상은 위너고 그 이하는 루저입니까? 저요? 74-68입니다. 아 168cm이 아니라 174cm라는 얘깁니다(웃음) 이 원인이 TV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런건데요, 물론 TV에 인류가 등장하긴 하죠. 물론 저와 박명수를 제외하곤 조~금 다른 인류가 등장합니다.(폭소)"

그의 웃음론의 핵심은 "차별을 고려해 정의된 고정관념을 철폐할 때 웃음이 시작된다"는 '몰상식이 곧 유머'란 메시지였다. 글로 표현하면 지나치게 무거운 것 같지만 말로 듣는 그의 이론은 대단히 유쾌하다. 그는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특출 날 것도 없는' 자신이 겪어온 인생을 통해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가 가장 힘들었던 무대는 다름 아닌 대구경북(TK)지역 교장선생님 600명을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분을 웬만하면 안 웃죠. 때문에 TK에서 성공한 레크레이션 강사는 전국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고정관념이란 게 어떤 거냐? 예를 들면 제가 군대에서 문선대 할 때 빡쎈 내무반 생활을 했습니다. 상관에게 보고할 때 진지한 표정으로 '충성 근무 중 이상 유(有)' '총원 40명, 외출1명, '탈영 1명'' 이상 보고 끝'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왜냐 제가 아무런 문제없는 듯이 보고를 하니까요.(폭소)"

가장 지적이고 연예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MC

방송가 MC란 인맥을 쌓기에 좋은 위치다. 그의 입놀림에 따라 연예인들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연예인이든 MC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독설가 MC든 순발력 넘치든 MC든 넓고 강고한 인맥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인맥이 좋은 연예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인맥은 '관리'된 것이 아닌 김제동 인품의 반영으로 평가된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인맥이 좋은 연예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인맥은 '관리'된 것이 아닌 김제동 인품의 반영으로 평가된다.


한 때는 김제동도 화려한 인맥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제동의 친구란 잘 알려진 대로 야구선수 이승엽, 가수 윤도현 비 이효리 소녀시대, MC 유재석 등 초호화 진영을 자랑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콘서트에 출연하겠다는 초특급 게스트들이 즐비하지만 때론 이 같은 인맥은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인연을 유머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제 형수님이 (게스트)로 나오시는 날도 있습니다, 누구신지는 다 아시죠?"(김제동)

"…"(관객)

"설경구님의 아내 송윤아씨 말하는 겁니다.(관객들 탄성) 그럼 저는 피아노를 준비할겁니다. 곡명은 '너의 결혼식' 혹은 '사랑해도 될까요?'…(관객 폭소)'

"이승엽 선수가 나오는 날도 있습니다. 물론 스윙 10번만 하고 들어갑니다(웃음)."

그는 너스레로 끝내지 않는다. 이를 고급 유머로 변용하고 차츰 자신의 인생철학과 접목시켜 나간다.

"저보고 인맥관리를 너무나 잘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인맥'이란 어떻게 관리가 되는 겁니까? 산맥관리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산맥이 '우리 한번 이어볼까'라고 하나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사람관계의 다양성을 택하고 사람의 본질을 좋아할 뿐입니다."

3회 공연에 출연한 유재석은 "언제라도 게스트가 펑크가 나면 내가 와서 메워줄 준비가 돼 있다"며 그와의 우정을 공고히 했고, 2회 김태우는 "그가 천재가 아닐까 싶었다. 그 때 그때 마다 필요한 말을 해주는 고마운 형"이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소녀시대 멤버 수영은 그를 위해 화환까지 보냈다.

"입장료 3만3000원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그는 방송 휴지기에 사회적 비판을 내포한 극장식 토크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는 방송 휴지기에 사회적 비판을 내포한 극장식 토크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토크쇼가 진실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은 하얀 거짓말도 있다. 애당초 공연 시간을 1시간30분이라고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대표적인 절묘한 거짓말이다. 게스트가 한번 등장했다가만 나가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순간 관객들은 30분 뒤에는 이 즐거움이 끝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공연은 2시간을 넘어 순식간에 2시간30분으로 늘어나는 마법을 부린다. 마치 인기가수의 콘서트처럼 앵콜 공연이 이어지고 관객들은 그런 치밀하게 계획된 반전을 유쾌하게 즐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공연 수익금 중 진행비를 제외한 상당 부분을 김제동의 이름이 아닌 이곳을 찾아준 팬들의 이름으로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는 것. 그의 따뜻한 유머 철학과 그의 실천이 맞닿는 순간 그에 대한 열광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무대가 끝나 갈 때쯤이면 놀랍게도 관객들은 스스럼없이 김제동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에서 기차를 타고 왔어요."
"진짜 대안학교를 만드실 건가요?"
"성공하기 전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왜 정치적 행보를 그치지 않나요?"

그는 힘들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즐거웠던 무명 레크리에이션 강사 시절을 회고하기도 하고, "나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잘 모르겠다. 내가 한 활동들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한다. 매 콘서트가 다른 주제로 진행되고 관객들의 질문 또한 다 다르지만 관객 모두가 그의 진솔한 화법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웃긴 외모나 공손한 태도, 특이한 말씨 혹은 탁월한 개그감각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통을 즐기고 자신이 느낀 바를 가장 솔직하게 전달하는 본능과 철학이 있었기에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혹자는 이런 그의 장점을 놓고 '폴리테이너'라고 비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 소극장 무대를 통해 자신은 대중과의 소통을 장려하는 '소셜테이너(Social+Entertainer)'임을 증명했다.

한바탕 신명나는 무대가 끝나자 그는 "저는 창문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문을 박차고 나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겠다"고 선언한다.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지만 관계 짓기는 멈추지 않겠다는, 2시간 30분에 걸친 유쾌한 무대가 한 예능인의 자립 선언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된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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