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작품은 왜?]간접광고로 버무린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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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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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에 간접광고(PPL)가 나오는 것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제작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방송사 광고비나 투자만으로 이 돈을 모두 충당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PPL의 정도가 지나쳐서 노골적으로 제품을 소개하거나 작품 내용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된다. 시청자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TV를 켜는 것이지 한 시간가량이나 이어지는 '종합광고화면'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KBS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는 보기드문 스케일과 액션,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일 방송된 아이리스 15회의 전국 시청률은 34.7%(TNS미디어코리아 기준)로 나타났다.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기념품 판매소이다. ‘아이리스’ 13회에서는 북한 테러범들이 이곳 앞을 서성대며 매장 간판과 내부가 반복해서 화면에 잡혔다. 또 쫓기는 신세인 이들이 해치 인형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KBS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기념품 판매소이다. ‘아이리스’ 13회에서는 북한 테러범들이 이곳 앞을 서성대며 매장 간판과 내부가 반복해서 화면에 잡혔다. 또 쫓기는 신세인 이들이 해치 인형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KBS 자료사진


그런데 최근 이 화제작의 과도한 PPL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던 '아이리스'의 협찬사는 대기업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까지 다양한 업종이 망라돼 있다. 업체, 단체 수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협찬사의 제품이나 공간, 기업 이미지 등을 드라마 곳곳에 반영하려다 보니 'PPL이 너무 심하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협찬사를 고려해 인위적으로 짜 넣은 듯한 PPL 장면이 내용의 흐름과 설득력에 악영향을 준다는 불만도 잇따른다.

▶보고 또 보고…PPL에 늘어지는 스토리

'아이리스'는 방영을 시작한 뒤 중반까지 화려한 액션 장면과 함께 영화를 방불케 하는 빠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야기 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생략되는 내용이 많다보니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극중 김현준(이병헌 역)이 헝가리에서 의식을 되찾은 뒤 갑자기 일본 아키타(秋田) 현에서 은신하는 장면, 일본에서 김현준과 함께 지내던 북한 공작원 김선화(김소연 역)가 한국으로 잠입해 NSS에 붙잡히는 과정은 전개가 너무 빨라서 황당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종영을 앞두고 이어지는 북한 테러집단의 핵 테러 스토리는 진행이 상당히 느리다. 아이리스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과 맞물려 이야기가 상세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내용이 단조롭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2일 방영된 15회에서 김현준과 김선화가 사라진 북한 테러집단의 뒤를 쫓는 장면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외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덕수궁 등 서울 도심 곳곳이 화면에 등장하는 가운데 서울시티투어버스가 주인공 뒤로 여러 번 카메라에 잡혔다.

2회 김현준(이병헌)과 최승희(김태희), 진사우(정준호) 세 사람이 술을 마시며 우정을 다지는 장면에선 하이트맥주 캔에 새겨진 제품명이 노출됐다. 협찬사인 동아오츠카의 포카리스웨트 역시 제품 이름과 로고가 화면에 잡혔다. 이 부분은 11회 방영된 회상 장면에 다시 나왔다.
2회 김현준(이병헌)과 최승희(김태희), 진사우(정준호) 세 사람이 술을 마시며 우정을 다지는 장면에선 하이트맥주 캔에 새겨진 제품명이 노출됐다. 협찬사인 동아오츠카의 포카리스웨트 역시 제품 이름과 로고가 화면에 잡혔다. 이 부분은 11회 방영된 회상 장면에 다시 나왔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드라마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협찬에 적극 나서면서 서울시티투어버스가 PPL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언뜻 지나가는 장면이라면 작품 전체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2일 방영분에선 이 버스가 광고를 연상케 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반복해서 나왔다.

홈페이지에도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이정욱 씨(ID: bluejungwook)는 "서울시티투어버스 홍보가 너무 티가 났다"는 의견을 적었다. 이언경 씨(ID: lialia000)도 "(서울시티투어버스가) 이병헌(김현준) 뒤를 거듭 지나가는데 예쁘고 자랑스럽지만 너무 광고 티가 난다"고 지적했다.

13회에서 북한 테러집단이 핵 테러를 위해 광화문광장 주변을 사전 답사하는 장면에서도 PPL이 두드러졌다. 특히 해치 기념품점 앞에서 테러범들이 서성대며 매장 간판과 내부가 반복해서 화면에 잡히고 쫓기는 신세인 이들이 해치 인형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은 작품의 긴장감마저 떨어뜨렸다.

한류배우 이병헌이 주연을 맡고 해외수출을 염두에 둔 작품인 점을 고려할 때 서울의 명소가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배경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노골적인 홍보 장면으로 겉돈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개연성은 어디에? 완성도 망치는 PPL

드라마 제작사, 방송사가 교묘한 방법으로 PPL을 작품에 반영할 때에도 금기사항이 있다. 제품명이나 브랜드를 직접 노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우 PPL이 아니라 직접적인 광고가 돼버려 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리스'에선 PPL의 수준을 넘어서서 '직접광고'나 다름없는 장면이 편집 없이 그대로 방영됐다. 모자이크나 컴퓨터그래픽(CG) 처리도 안 된 채 제품 자체가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드라마 초반에 김현준과 최승희(김태희 역), 진사우(정준호 역) 세 사람이 2회에서 술을 마시며 우정을 다지는 장면에선 하이트맥주 캔에 새겨진 제품명이 방영됐다. 협찬사인 동아오츠카의 포카리스웨트 역시 제품 이름과 로고가 화면에 잡혔다. 이 부분은 11회 방영된 회상 장면에 다시 나왔다.

14회에서 김현준(이병헌)이 자신을 지원해준 정훈(김갑수 역)이 살해당하는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장면에선 초콜릿폰에 새겨진 LG 로고가 화면 오른쪽에 드러났다. LG싸이언은 ‘아이리스’의 협찬사다.
14회에서 김현준(이병헌)이 자신을 지원해준 정훈(김갑수 역)이 살해당하는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장면에선 초콜릿폰에 새겨진 LG 로고가 화면 오른쪽에 드러났다. LG싸이언은 ‘아이리스’의 협찬사다.


14회에서 김현준이 자신을 지원해준 정훈(김갑수 역)이 살해당하는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장면에선 초콜릿폰에 새겨진 LG 로고가 화면 오른쪽에 드러났다. LG싸이언은 '아이리스'의 협찬사다.

김현준이 손에 든 초콜릿폰은 이 부분에서 제품 광고를 방영하듯 오랜 시간 노출됐다. 시청자 김형곤 씨(ID: kmhgn86)는 "(노골적인 PPL대신) 상표를 다 가리고 촬영한 뒤 (홈페이지) 게시판에 상표관련 문답 게시판을 만들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초콜릿폰은 11회에서 북한의 핵심 첩보요원인 박철영(김승우)이 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에서도 이미 문제가 된 바 있다. 극중 박철영은 초콜릿폰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제품 전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자나 요원들이 한국 대기업에서 만든 최신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PPL이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내린 대표적 사례다.

초콜릿폰과 마찬가지로 북한 고위인사나 요원들이 기아자동차를 타는 장면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의 불만이 컸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번호판만 '평양'으로 돼 있는 기아차의 등장에 "북한에서도 한국 자동차를 타는 모양"이라며 꼬집는 의견이 이어졌다.

▶운전하고 또 운전하고…기아차 광고?

특히 극 초반에 김현준 등 출연 배우들이 비밀임무와 탈출 등으로 현란한 몸 액션을 보여준 것과 달리 최근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추격하는 장면이 두드러지면서 게시판엔 '아이리스가 기아차 광고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기아차가 즐비한 곳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유리창이 깨지는 등 차량이 손상을 입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 현실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아차가 '아이리스'의 협찬사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13회에서 지하주차장에 K7, 모하비, 로체 등 기아차만 주차된 것을 본 시청자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또 3~6회에 요원들이 헝가리에서도 로체 등 기아차만 타고 임무를 수행하거나 북한 고위 당국자가 기아 오피러스를 타고 나타나는 장면은 과도한 PPL이 작품의 완성도를 낮춘 사례다.

13회에선 K7의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클로즈업하며 자세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시청자 안성준 씨(ID:aceasj777)는 '아이리스가 기아차 광고드라마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거리에 온통 기아차만 보여 어이가 없고 지겹다"며 PPL이 노골적이라고 비판했다.

기아차는 ‘아이리스’의 주요 협찬사이다. 최근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추격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 인터넷 게시판엔 ‘아이리스가 기아차 광고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심지어 북한 고위 당국자가 타는 차도 기아차이다.
기아차는 ‘아이리스’의 주요 협찬사이다. 최근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추격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 인터넷 게시판엔 ‘아이리스가 기아차 광고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심지어 북한 고위 당국자가 타는 차도 기아차이다.


창고를 전전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테러범 김소연이 매회 뛰어난 패션 감각을 발휘하는 것도 작품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김소연이 입은 코트 등 옷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해당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도 전해진 바 있다.

협찬사인 마코스아다마스가 제작한 십자가 목걸이 USB도 이병헌이 소중하게 간직하며 들여다보는 등 여러 회에 걸쳐 노출됐다. 업체 측은 이 USB를 제품화해 '아이리스'와 연계시켜 각종 이벤트까지 진행하며 판촉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도 NSS 내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진사우 뒤로 동료 요원들이 붉은색 포장이 뚜렷한 컵라면(농심이 협찬사)을 먹거나 요원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때 특정 브랜드의 마우스를 반복해서 클로즈업한 장면 등도 내용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PPL로 보인다.

▶PPL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그래도 작품이 우선!

기아차 관계자는 '아이리스'의 PPL 효과에 대해 "아직 가시적인 판매량 증가는 확인되지 않지만 소비자의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서 기아차 K7을 운전한 이병헌은 K7 신차발표회에서 제품을 소개하며 홍보 모델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촬영장소를 제공한 서울시도 반대 여론이 거센 가운데 조성한 광화문광장이나 한강전망대의 홍보 효과를 반기고 있다.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북한 테러범들이 가지고 놀던 해치 인형이 불티나게 팔린다.

'아이리스'의 PPL 효과는 인터넷에서도 알 수 있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입은 옷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제품 브랜드와 매장, 가격 등 정보가 자세하게 소개된 댓글도 눈에 띈다.

시청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부족한 제작비 충당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옹호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PPL이 작품 수준을 낮춘다'고 반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PPL을 두고 담당PD 등 드라마 제작자들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비리 사건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건국대 강사)는 "PPL이 콘텐츠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무조건 나쁘게 볼 수 없다"면서도 "PPL의 허용 범위를 두고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위까지 온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이은택 수습기자 nabi@donga.com
유근형 수습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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