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권재현<트랜스크리틱>]일제강점기에 대한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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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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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웃음의 대학’,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 분석

여기 두 편의 연극이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광기로 치닫던 1940년대 식민본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담은 연극입니다. 전자는 요즘 대학로 흥행작 중 하나인 '웃음의 대학'입니다. 후자는 지난 주말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내린 경기도립극단의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입니다.

코미디상황극의 대가인 미타니 코우키 원작의 '웃음의 대학'(이해제 연출)은 1940년 10월 일본 어느 도시 경시청 보안과에서 펼쳐집니다. 주인공은 검열관 사키사카 무츠오(송영창)와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 희극작가 츠바키 하지메(봉태규). 작가가 쓴 희극대본을 검열관이 검열해 공연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웃음의 대학’의 주인공인 검열관(송영창)과 희극작가(봉태규). 검열관은 전시에 국민을 웃기는 희극을 금지하기위해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작가는 그걸 다 들어주면서 훨씬 더 재미있는 대본을 만들어낸다.
‘웃음의 대학’의 주인공인 검열관(송영창)과 희극작가(봉태규). 검열관은 전시에 국민을 웃기는 희극을 금지하기위해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작가는 그걸 다 들어주면서 훨씬 더 재미있는 대본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평생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검열관이 전시(戰時)에 국민을 웃기는 희극은 아예 금지시켜야한다는 신념에 투철한 인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반면 그의 호통에 꼼짝 못하는 작가는 그 국민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어떻게든 공연을 올려야한다(Show must go on)는 소박한 꿈을 지녔습니다. 그 결과 검열관은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쏟아놓는데 그때마다 작가는 그를 반영해 더 웃긴 내용으로 작품을 수정해 갖고 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검열관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일부러 셰익스피어 희극에 "천황폐하 만세" 삼세창이 들어가야 한다는 억지 조건을 내겁니다. 작가는 고심 끝에 로미오, 아니 정확하게는 로미오 역을 하는 햄릿이 말을 타고 갈 때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 외치게 합니다. 햄릿의 말 이름을 '천황폐하 만세'로 설정한 것입니다. 검열관은 어떻게 말 이름이 그렇게 길 수 있냐고 트집을 잡습니다. 작가는 이번엔 햄릿이 타고 가는 마차를 세 마리 말이 끌고 가는 것으로 설정합니다. 세 마리 말의 이름이 천황, 폐하, 만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작가의 열정에 검열관은 조금씩 동화됩니다. 하지만 역시 경찰관답게 주변 탐문수사를 펼칩니다. 그 결과 작가가 극단 관계자와 그 주변사람들로부터 '배신자' '국가의 개' '관료의 앞잡이'라는 평판을 듣는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검열 받은 대본으로 공연을 하느니 공연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공연취소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작 그대로 공연을 올려 작가적 양심을 지켜야하는데 비굴하게 굽실거린다는 것이지요.

검열관은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처음부터 공연을 중지시킬 마음으로 온갖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그걸 다 들어주면서도 훨씬 더 재밌는 대본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감복해 결국 공연을 허가했다, 당신은 내가 아는 작가 중 최고다'. 작가도 그 때야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웃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한 세상에 맞서기 위한 자신만의 투쟁방식으로 검열관의 요구를 전부 받아들이되 전보다 더 웃기는 대본을 쓰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고.

이 지점에서 문득 저 연극 속 극작가가 식민지 조선의 극작가였다면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열관에 굽실거리고, 관할 경찰서장의 이름을 공연에 등장시키고, 동료들로부터 '관료의 앞잡이'라고 불리고, 결정적으로 검열관의 협박에 굴복해 인쇄된 대본에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을 집어넣은 극작가. 게다가 그는 그 이상한 나라를 다스리시는 천황의 부름을 받고 성전(聖戰)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해야합니다. 혹여 후대에 일제에 부역한 극작가로 손가락질 받고 있지는 않을까요.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의 한 장면. 주인공 광수는 일본 순사의 협박에 섬마을 무덤을 파헤치는 등 아무도 나서지 않는 궂은일을 묵묵히 해낸다.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의 한 장면. 주인공 광수는 일본 순사의 협박에 섬마을 무덤을 파헤치는 등 아무도 나서지 않는 궂은일을 묵묵히 해낸다.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는 1990년대 연극계 최대 흥행콤비였던 이만희 작가와 강영걸 연출가가 16년 만에 다시 뭉쳐 올린 작품입니다. 4월 경기도립극단이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나흘 간 공연한 작품을 들고 서울 대학로에 입성해 아흐레 동안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만희 작가는 30년 전 젊은 객기로 쓴 작품이라며 부끄러워했지만 강영걸 연출은 "배경은 일제강점기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자신했습니다.

무대는 1940년대 목포 인근 맹골도라는 섬마을입니다. 옛 도자기에 눈이 뒤집힌 일본순사가 독립군 군자금이 묻혀있다는 의혹으로 섬마을 무덤을 파헤치겠다며 들이닥칩니다. 뒤에선 큰 소리 치던 사람들도 막상 순사가 총을 휘둘러대니까 꼼짝 못합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무덤을 팠다가 동티가 날까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한 명이 나서 무덤을 팝니다. 광수(이찬우)라는 그 주인공은 만주에서 독립 운동하다가 고문으로 절름발이가 돼 낙향한 인물입니다. 광수가 판 무덤에서 군자금도 도자기도 나오지 않자 일본 순사는 돌아갑니다.

광수는 그렇게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합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런 광수를 추겨 세우며 한사코 안하겠다는 그에게 마을 당제의 제주를 맡깁니다. 그런데 그 후 물고기 잡으러 간 마을 청년들이 물에 빠져 죽는 흉사가 잇따르자 사람들은 광수 흉을 보기 시작합니다. 광수는 자신이 장애인이기도 하지만 아내는 나병에 걸렸고 누구 씨인지도 모르는 애를 임신한 벙어리 딸을 뒀습니다. 그런 가족사의 아픔 때문에 제주를 안 하겠다는 그에게 억지로 제주를 맡겨놓고는 흉사가 생기니까 그 때문에 부정을 탔다고 쑥덕거리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광수의 아내는 결국 섬을 떠나고 맙니다.

‘해는 져서 어둔 날에…’의 광수는 억울하게도 마을 사람들에게 친일파로 낙인찍혀 멍석에 말린 채 집단 폭행을 당한다.
‘해는 져서 어둔 날에…’의 광수는 억울하게도 마을 사람들에게 친일파로 낙인찍혀 멍석에 말린 채 집단 폭행을 당한다.



그때 나카무라(강성해)라는 형사가 나타나 무덤을 다시 파헤치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는 예전 광수를 고문한 형사입니다. 그런 그가 파헤치겠다는 무덤 중에 광수네 무덤이 빠져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대놓고 광수가 나카무라와 친분을 이용해 자신만 쏙 빠졌다고 험담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광수와 당나무 아래에서 똥을 눈 광수 딸 때문에 부정이 타서 그렇다며 광수에게 멍석을 뒤집어씌우고 집단폭행을 가합니다. 울분을 참지 못해 섬을 떠나려던 광수는 나카무라의 저지로 섬을 떠나지도 못합니다. 어머니가 조선인이어서 절반은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나카무라는 그런 광수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쯧쯧쯧. 다른 족속이라면 몰라도 조선은 절대로 일본의 적수가 못돼. 어저께 일도 단면이 되겠지. 내가 자기들 무덤을 파겠다했으면 시급한 일이 무엇이었겠나. 그런데도 제사가 어떻고 똥 눈 것이 어떻고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따지고 볶구 패구. 들짐승들이나 날짐승들도 자기들끼리 그렇게 싸우진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싸움이 갈매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싸움이냐? 그렇지 않지. 조선 땅 전체가 다 그래. 그런 놈들이 뭐가 어쩌고 어째?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고 약탈했다고? 이 친구야. 조센징은 차라리 우리 일본 제국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 영광이야. 조센징은 스스로 투사가 되려고 하지도 않고, 투사가 나오면 따르지도 않고 그러면서 가짜 투사는 많고 그래. 난 이런 더러운 조센징의 피를 응징하기 위해 조선에 왔어. 난 여기서 내 반쪽을 완전히 없앨 것이야. 명심해라 김광수! 조선은 개조되어야 해."

이런 젠장! 어떻게 광수 같은 인물이 나카무라랑 친한 친일파로 낙인찍히고 마을을 망쳐놓은 장본인으로 몰려서 쫓겨나는 것도 부족해 자신을 다리병신으로 만든 나카무라로부터 이런 말까지 들어야한다는 말입니까.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뜨려도 되는 것일까요? 이게 과연 식민지 조선에서만 벌어진 일일까요? 광복 후 60년 뒤에 친일파로 낙인찍힌 인물 중에 광수 같은 이는 없을까요?

‘해는 져서 어둔 날에…’의 광수네 딸은 누구 씨인지 모르는 애를 임신한 벙어리다. 마을 에 흉사가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 광수의 딸까지 들먹이며 이들 때문에 부정을 탔다고 비난한다.
‘해는 져서 어둔 날에…’의 광수네 딸은 누구 씨인지 모르는 애를 임신한 벙어리다. 마을 에 흉사가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 광수의 딸까지 들먹이며 이들 때문에 부정을 탔다고 비난한다.


최근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외롭게 이런 작업을 펼쳐온 분들의 노고를 싸잡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일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를 비판하면서 누구는 들어갔는데 누구는 왜 빠졌느냐는 식의 물귀신 행태를 보이는 것도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에게 과연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지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일만큼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단을 발표하는 것 보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일이 더 벅차고 감동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다시 묻고 싶습니다. 그 명단에 포함된 인물 중에 과연 츠바키 하지메나 김광수와 같은 인물은 정말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누추하고 비천한 삶이라고 그것을 이어가기 위해 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을 놓고 민족정기를 훼손한 사람이라면서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웃음의 대학'은 웃음으로, '해는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는 눈물로 묻고 있습니다.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웃음의 대학'에서 잔잔한 웃음을 안겨주는 달력 속 소화15년(1940년) 10월은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된 1940년 8월 10일 이후 딱 두 달 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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