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사각지대를 비추는 유쾌한 4가지 시선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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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아라 펭귄’은 기러기 아빠, 영어조기교육에 열성인 엄마, 채식주의자인 신입사원 등 현실적 캐릭터를 통해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포착했다. 사진 제공 AT9
영화 ‘날아라 펭귄’은 기러기 아빠, 영어조기교육에 열성인 엄마, 채식주의자인 신입사원 등 현실적 캐릭터를 통해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포착했다. 사진 제공 AT9
24일 개봉 ‘날아라 펭귄’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날아라 펭귄’(24일 개봉)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보리픽쳐스가 공동 제작한 인권 영화다. 국가인권위는 2억 원을 지원했다. ‘인권영화’라는 말에서 “따분한 교육용 영화겠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이 영화에서는 버려도 좋다. 기러기 아빠가 사람답게 살 권리, 평생 남편에게 ‘여편네’라 불린 아내가 자기 이름으로 인생을 살 권리, 술 분해요소 0%인 채식주의자의 음주거부권 등 4개의 에피소드 속 인물을 통해 알고도 외면당했던 생활 속 인권을 강조한다.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자식의 조기영어교육에 목숨 거는 엄마 희정(문소리). 밤늦게 아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다 조는 아들을 보며 ‘깜빡 잠든 게 영어로 뭐지? Doze인가?’라고 묻는다. 가족이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매일 아침 전화영어레슨을 듣는 희정과, 아들을 데리고 영어마을 대신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남편(박원상)의 갈등이 코믹하지만 씁쓸하게 묘사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갓 입사한 채식주의자 주훈(최규환)과 담배 피우는 미선(최희진)이 회사에서 부딪히는 싸늘한 시선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나이 들면서 위궤양과 탈모를 겪는 기러기아빠 권 과장(손병호) 이야기, 황혼이혼 위기에 처한 60대 송 여사(정혜선)와 권 선생(박인환) 부부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한 임 감독은 현미경을 들이대듯 세밀하면서도 예리하게 일상을 포착했다. “하루 한 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은 일식 씨, 두 끼 먹으면 이식이놈, 세 끼 먹으면 삼식이 새끼”처럼 생활형 대사들도 잦다. 대부분의 상황이 교훈적으로 봉합되지만 마지막 전 출연진이 춤을 추는 장면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제목의 ‘펭귄’은 독수리도, 갈매기도 될 수 없는 ‘펭귄 아빠’에서 따왔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애를 보러 가는 아빠는 기러기, 돈이 많아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빠는 독수리, 공항에서 손 흔들고 한 번도 날아가 보지 못한 아빠는 펭귄”이다. 전체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자료 제공: A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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