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영화 ‘날아라 펭귄’(24일 개봉)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보리픽쳐스가 공동 제작한 인권 영화다. 국가인권위는 2억 원을 지원했다. ‘인권영화’라는 말에서 “따분한 교육용 영화겠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이 영화에서는 버려도 좋다. 기러기 아빠가 사람답게 살 권리, 평생 남편에게 ‘여편네’라 불린 아내가 자기 이름으로 인생을 살 권리, 술 분해요소 0%인 채식주의자의 음주거부권 등 4개의 에피소드 속 인물을 통해 알고도 외면당했던 생활 속 인권을 강조한다.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자식의 조기영어교육에 목숨 거는 엄마 희정(문소리). 밤늦게 아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다 조는 아들을 보며 ‘깜빡 잠든 게 영어로 뭐지? Doze인가?’라고 묻는다. 가족이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매일 아침 전화영어레슨을 듣는 희정과, 아들을 데리고 영어마을 대신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남편(박원상)의 갈등이 코믹하지만 씁쓸하게 묘사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갓 입사한 채식주의자 주훈(최규환)과 담배 피우는 미선(최희진)이 회사에서 부딪히는 싸늘한 시선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나이 들면서 위궤양과 탈모를 겪는 기러기아빠 권 과장(손병호) 이야기, 황혼이혼 위기에 처한 60대 송 여사(정혜선)와 권 선생(박인환) 부부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한 임 감독은 현미경을 들이대듯 세밀하면서도 예리하게 일상을 포착했다. “하루 한 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은 일식 씨, 두 끼 먹으면 이식이놈, 세 끼 먹으면 삼식이 새끼”처럼 생활형 대사들도 잦다. 대부분의 상황이 교훈적으로 봉합되지만 마지막 전 출연진이 춤을 추는 장면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제목의 ‘펭귄’은 독수리도, 갈매기도 될 수 없는 ‘펭귄 아빠’에서 따왔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애를 보러 가는 아빠는 기러기, 돈이 많아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빠는 독수리, 공항에서 손 흔들고 한 번도 날아가 보지 못한 아빠는 펭귄”이다. 전체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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