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 ‘보이지 않는 손’에 방문진 ‘감독권한’ 유명무실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방문진의 문제점 지적에도 PD수첩 ‘모르쇠’
MBC간부 “노조가 사장 인사까지 간여하니…”
경영진, 노조 눈치보며 불법파업 등 대처 미흡

방송문화진흥회가 최근 발간한 ‘2008년 MBC 경영평가보고서’에서 PD수첩 광우병 편과 뉴스데스크의 자사 중심적 보도를 지적하고 있으나 MBC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노조를 비롯해 사내 직능단체들이 인사와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방문진을 비롯한 경영진의 관리 감독 기능을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영평가보고서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영어 자막 처리에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이 인간광우병(vCJD)으로 번역됐고 다우너 소를 광우병 의심 소로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PD수첩 측은 일부 실수로 인한 번역의 오류 말고는 다우너 소를 광우병 의심 소라고 한 것 등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PD수첩의 한 관계자는 “자막 처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점은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말했다.

경영평가보고서의 지적은 법원의 정정 결정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 등에서 제기된 것들인데도 MBC 경영진은 자체 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 등 사후 조치 없이 제작진의 주장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경영평가보고서는 또 뉴스데스크의 미디어관계법 보도와 관련해 “지상파 진입과 종합편성채널 허용 등과 관련해 공정성 시비를 낳기도 했다. 미디어 소유규제 완화와 관련해 균형 있는 보도를 하기보다는 자사의 입장을 중심으로 방송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뉴스데스크는 미디어관계법 보도에서 ‘정권의 방송 장악’ ‘매체 독과점 확대’ ‘공룡미디어 탄생’과 같이 부정적 표현으로 자사 중심적 보도를 이어갔다.

이처럼 MBC의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방문진의 보고서를 MBC가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노조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인사와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MBC 노조는 2005년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문순 씨가 부장대우에서 일약 사장으로 수직 상승할 만큼 사내 영향력이 큰 집단이다. 지난해 2월 엄기영 사장이 선임될 때에도 노조는 사장 후보 중 특정 인사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장 인선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 4월엔 전영배 보도국장이 신경민 앵커를 교체하자 기자협회와 노조를 중심으로 제작 거부를 벌여 전 국장이 물러나기도 했다.

노조는 2008년 말부터 미디어관계법 개정과 관련해 세 차례 불법 파업에 나섰지만 경영진은 감봉, 근신 등 가벼운 징계에 그쳐 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MBC의 한 간부는 “노조가 사장 인사까지 간여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노조의 눈치를 보는 게) 불가피하다”며 “본부장, 국장을 임명할 때도 노조의 반대가 없을 만한 인사를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다. 특히 단체협약에 본부별 경영에 최종 책임을 지는 본부장의 산하 국장에 대한 평가와 인사권을 배제하고, 방송 관련 실무권한을 부서장에게 위임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경영진이 책임 경영을 할 수 없는 구조적 결함도 지니고 있다.

MBC 노조의 입김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여권 출신이 방문진 이사의 대다수를 차지한 데다 노조가 추천한 이도 이사진에 포함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이에 따라 8월 임기가 끝난 지난 방문진이 관리 감독 권한을 통해 MBC 내부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게 사실상 어려워진 구조가 됐다. 지난해 7월 PD수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자 방문진이 관련 보고를 받으려고 했으나 일부 이사들이 “정당한 보도이기 때문에 보고 자체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투표까지 벌이기도 했다.

한 언론학자는 “MBC를 전체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주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노조가 정치집단화하며 스스로 비대한 권력이 됐다”며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의 불공정성과 편향성은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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