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우아한?… “악녀 맡고 ‘30년 이미지’ 망가졌죠”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SBS ‘찬란한 유산’ 백성희 役 김미숙

《“당신 심장을 팔아서라도 부도 막아!”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토, 일 오후 10시)에 나오는 아내 백성희의 독설이다.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위로는커녕 앙칼진 요구를 해댄다. 이 여자는 남편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사망보험금이 나오자 독차지하고 남편의 자식들을 거리로 내쫓는다. 그 남편이 살아 돌아오자 “당신이 평생 돈 걱정 안하고 살게 해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날 이 꼴로 만들었다”며 등을 돌리고 ‘물주’가 될 새 남자를 유혹한다. 이쯤 되면 새로운 악녀 탄생이다. 더 놀라운 점은 백성희를 연기하는 배우가 ‘고고한, 우아한’ 같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김미숙(50)이라는 점이다. 김미숙이 악역을 맡은 것은 1979년 KBS 드라마 ‘동심초’로 데뷔한 이래 처음이다.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김미숙을 만났다.》

끝까지 악녀로 살아남아 자존심 지키는 역할이 좋아
실제와 비슷한 캐릭터는… 로비스트 ‘채마담’ 50% 닮아

“백성희 역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CF 다 떨어질 것이다. 30년 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나빠지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며 말리더라고요.”

‘찬란한 유산’은 중견 설렁탕 기업의 망나니 후계자 선우환(이승기)과 계모에게 버림받은 착한 아가씨 고은성(한효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6, 17일(7, 8회) 평균 시청률이 26.6%(TNS미디어코리아)로 지난주 전체 프로그램 2위에 올랐다.

그 인기의 배경에는 ‘현실감 있는 악역’ 백성희를 연기하는 김미숙의 힘이 한몫했다는 평이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악한 모습을 숨기며 조용히 드러내는 폭발적인 ‘포스’가 최고” 등의 평이 올라왔다. 극중 어떤 얘기라도 다 들어줄 것처럼 선한 표정을 짓다가 순식간에 “(남편을) 잊어야 돼! 그래야 내가 살아”라고 소리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김미숙은 극중 백성희의 최후에 대해 “병에 걸려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식은 재미없다”며 “감옥에 가건 자살을 하건 끝까지 악한 여자로 자존심을 지키며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숙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플루트 연주가 그의 특기로 알려져 있지만 김미숙은 “실제로는 그만둔 지 오래”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술은 와인이 아니라 맥주나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김미숙은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을 진행할 때 남편이 방송을 듣다가 ‘남들은 당신의 이런 모습밖에 모르겠지’라며 웃었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배우였어요. 시낭송회나 연극 보러 다니고 잘난 척하고 말 없는 학생이었죠. 도도하고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것은 백성희와 닮았네요. 책가방에 도시락을 같이 넣거나 도시락 가방을 따로 들고 다니는 것 모두 여고생으로서 예뻐 보이지 않을 것 같아 1년 반 동안 도시락을 안 싸갔어요.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아 ‘왕따’를 당한 적도 있어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선 “드라마 ‘로비스트’에서 팜파탈이었던 ‘채 마담’ 캐릭터가 절반가량, ‘사랑해 울지 마’의 푼수 문신자 캐릭터가 20%”라고 말했다. 나머지 30%는 “저도 잘 모르지만 덜렁거리는 모습”이란다.

1998년 결혼한 남편 얘기를 꺼내자 “노처녀 구제했지, 아들딸 갖게 해줬지, 배우 생활 외조 잘해주지, 뭘 더 바라요?”라고 말하면서도 싸울 때는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날 좀 봐줘!”라며 화를 낸다고 했다. 실제처럼 해달라고 부탁하자 극중 백성희의 싸늘한 얼굴을 금세 지어보였다.

그에게 인간의 악한 면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물었다.

“사람 생각은 종이 한 장 차이죠.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도 다시 풀고 채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기자분은 백성희 말고 저처럼 좋은 여자를 만나세요. 하하하. 오늘 인터뷰 때문에 안티 팬이 생기는 것 아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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