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영화 밑그림 콘티 제작하는 ‘콘티 브라더스’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김씨표류기’ ‘박쥐’ 등 한국 영화의 콘티를 그린 ‘콘티 브라더스’의 차주한 천범식 김영웅 송선찬 씨(왼쪽부터). 김미옥 기자
‘김씨표류기’ ‘박쥐’ 등 한국 영화의 콘티를 그린 ‘콘티 브라더스’의 차주한 천범식 김영웅 송선찬 씨(왼쪽부터). 김미옥 기자
‘콘티 브라더스’가 밑그림을 그린 영화 ‘박쥐’ 콘티의 일부. 자료 제공 콘티 브라더스
‘콘티 브라더스’가 밑그림을 그린 영화 ‘박쥐’ 콘티의 일부. 자료 제공 콘티 브라더스
“일종의 그림대본… 한편에 1500장 그려요”

박쥐, 김씨 표류기, 싸이보그 그녀, 인사동 스캔들, 해운대…. 현재 상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 영화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밑그림, 즉 대본을 화면으로 옮기기 전에 밑그림을 그려보는 콘티 작업을 모두 한 업체가 맡았다는 것이다. ‘콘티 브라더스’가 그 주인공이다.

‘콘티 브라더스’는 차주한(32) 송선찬(31) 김영웅(27) 천범식(27) 씨 등 4명으로 이뤄졌다. 2005년 광고회사에서 선후배 사이였던 차 씨와 송 씨가 팀을 결성했고 대학에서 미술과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김 씨와 천 씨가 나중에 합류했다. 첫 작품인 ‘인형사’를 시작으로 ‘친절한 금자씨’ ‘천하장사 마돈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콘티를 맡았다.

16일 찾아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사무실은 이들 3명의 거주지인 동시에 작업실이었다. 콘티가 무엇인지 묻자 대뜸 사전 두께의 책부터 내민다. 14일 개봉한 영화 ‘김씨표류기’의 ‘콘티북’이었다. 책을 펼치자 만화책처럼 다양한 장면들이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 영화에서 본 장면과 비슷했다.

“한국 영화가 잘나갈 때는 크랭크인 시작 1년 전부터 대본 분석하며 콘티를 짰어요. 요즘엔 투자자가 정해져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 캐스팅이 된 시점부터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래도 일감은 넘쳐요.”(김)

한 영화에 보통 콘티 1500장 정도를 그린다. 영화 장르나 촬영 여건, 카메라 대수에 따라 콘티 수도 다르다. 감독 성향도 변수다. 홍상수 감독은 콘티를 머릿속에 그리고 봉준호 김기덕 감독은 직접 그린다. 박찬욱 감독과 ‘박쥐’를 비롯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을 함께 작업했다. 이들은 “박 감독이 하루 10시간 일한다고 하면 8시간은 여유 있게 하다가 나머지 시간에 집중해 일한다”며 “작업에 들어가면 늘 새로운 이미지를 주문하는 까다로운 고객”이라고 말했다.

“콘티는 철저하게 영화의 사전 작업일 뿐이에요. 촬영을 시작하면 콘티는 제작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린 구도나 그림에 배우나 감독들이 갇히지 않아야 하거든요.”(차)

영화 한 편당 콘티를 담당하는 인력은 대략 3명. 영화 작업이 세분화 전문화해 콘티작업도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꼽힌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겉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크다.

“비주얼 면에서 진화했죠. 동시에 속도와 리듬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많은 영화가 속도에만 치우쳐 비슷비슷한 구도와 장면을 되풀이하고 있어요.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잖아요. 감독만의 독창적인 이미지가 있어야 그게 바로 영화죠. 우리는 감독에게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고 밑그림을 그릴 뿐입니다.”(송)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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