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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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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지상파 3사를 통틀어 서민 드라마를 내세운 작품은 KBS1 ‘산 너머 남촌에는’(수 오후 7시 반·사진) 한 편뿐이다. 2007년 10월 시작했으며 홈페이지에선 귀농 가족이나 베트남에서 온 신부 등을 통해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취지를 얼마나 제대로 구현하는지는 의문이다. 25일 방영한 71화를 보자. 남편과 사별한 이장네 며느리 김승주(조은숙)와, 이혼한 뒤 삼남매를 데리고 귀농한 나진석(이진우)이 장에 갔다 돌아오다 우연히 마주친다.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둘은 인근 비닐하우스로 피한다. 이 모습이 우연히 마을 사람 눈에 띄어 오해를 낳고….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처럼 빗나간 핑크빛 스캔들이 한국의 ‘농촌 현실’과 얼마나 상관있을까. 시골에도 로맨스야 있겠지만, 한창 일손 바쁜 3월에 농사를 짓는 장면은 2∼3개에 불과하고 몇 초 되지도 않는다. 이날 방송은 농촌의 삶 대신 여느 드라마에서 흔한 남녀 갈등 포맷을 그대로 갖고 와 포장했을 뿐이다. 배경만 농촌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소문 하나를 두고 모든 마을 사람이 드라마 50분 내내 삼삼오오 모여 이리 옮기고 저리 따지는 모양새는 ‘소재의 빈곤’ 실태를 드러낸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농촌에서 일어날 만한 에피소드가 여러 개 이어져야 한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농촌의 현실도 담지 못했고, 극적 재미도 주지 못했다.
‘이스트엔더스’는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영국 드라마 시청률 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 생명력은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스토리 덕분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에 대해서는 저조한 시청률과 수익성 문제로 폐지가 거론된다고 한다. 하지만 시청률 등을 거론하기 이전에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