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美 히어로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6분


미국 액션 영화의 히어로들이 바뀌고 있다.

완벽하고 정의감 넘치는 ‘슈퍼맨’ ‘람보’에서 이제는 “히어로 맞아?”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기 고민 끝에 거듭나는 캐릭터로 바뀌고 있는 것.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핸콕’ 등 최근 나온 미국 액션 영화의 히어로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히어로의 역할에 대해 확신이 없어 갈등할 뿐 아니라 소시민적인 고민도 한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환영을 받았던 슈퍼맨 등 정통 히어로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평론가들은 “‘미국의 국제적 위치를 반영하는 결과”라고 분석한다.

○ 절대 영웅 슈퍼맨에서 고민하고 반성하는 핸콕으로

슈퍼맨 람보 코만도로 대표되던 옛 히어로들은 정의를 수호하고 확신에 찼던 캐릭터였다. 옛 소련이나 외계인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내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설령 오해 때문에 비난을 받아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불굴의 투사였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인크레더블 헐크’의 영웅은 다르다. 주인공 헐크는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나타나는 ‘괴물’이다. 평소에는 평범한 과학자에 불과한 그는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는 힘을 갖춘 위험한 존재로 변한다.

영화평론가 박유희 씨는 “과거 히어로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막강한 적으로부터 세계를 보호할까, 잃어버린 힘을 어떻게 되찾을까 정도였으나 요즘 히어로들은 내부에 선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내적 갈등이 많다”고 설명했다.

7월 개봉을 앞둔 ‘핸콕’의 주인공 핸콕도 마찬가지. 핸콕은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제멋대로 행동과 안하무인적인 언행 때문에 구해준 사람으로부터 오히려 욕을 먹는 인물. 그는 때로는 시민들로부터 공공질서를 수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 고민하는 미국, 그러나 다시 영웅이 되는 미국

그렇다면 2000년대의 히어로들은 왜 다를까. 전문가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의 경계 심리를 이유로 들고 있다.

영화평론가 황영미 씨는 “냉전 승리 후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지나친 힘에 대한 세계적인 경계 심리와 이를 둘러싼 미국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며 “특히 9·11테러 이후 이 같은 변화가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오만했던 히어로들은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겪는다. 미군에 무기를 팔던 ‘아이언맨’의 주인공 스타크 박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무기가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사재를 털어 이를 막는 ‘히어로’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힘을 믿고 안하무인이었던 핸콕이 기자회견을 통해 “사는 게 쉽지 않다. 앞으로 달라지겠다”며 읍소하는 장면도 이라크전 반대 여론 등 미국의 최근 분위기와 맞물려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고 이러한 히어로들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기존 ‘영웅 문법’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히어로들이 자기 갈등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동안 세계에는 더 큰 위협이 찾아오고 이를 물리친 히어로를 사회가 다시 환영하는 과정이 동일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이 영화들은 히어로가 사라지면 그 틈을 노린 악한들이 활개를 쳐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며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의 영웅상이 변하긴 했으나 세계 평화의 사도로서 인정받으려는 미국의 오랜 꿈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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