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할 수 있을까?” “저 준비된 기자에요”
백보람이 일일기자로 나갈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시범경기 LG 대 한화전. 생전 처음 야구장에 취재에 나서는 초보 백 기자, 의외로 당당하다. “저 오늘 취재를 위해 미리 인터넷과 스포츠신문을 보며 공부하고 왔어요”고 자신감을 보인 그는 양성동 스포츠부장로부터 취재 지시를 받았다.
# 초짜 기자는 힘들다는 김재박 감독님과 단독 인터뷰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오전 11시 서울 잠실 구장. 홈팀인 LG트윈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덕아웃에 있는 김재박 감독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백보람 씨네. 실물이 훨씬 예쁘네요.” “스포츠동아 일일 기자로 나왔어요. 잘 부탁드려요.”
좀처럼 단독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김 감독도 ‘미녀 기자’ 앞에서는 말이 술술 나온다. “선발은 옥스프링이고 타자 중엔 4번 최동수가 컨디션이 좋고...”
# “말 나온 김에 최동수 선수 만나야지”
타격 연습을 준비하는 최동수 선수를 만났다. 최 선수가 “시범경기 타율이 좋지 않아 전성기 때 선동렬 감독님 방어율 수준”이라고 농담을 건넸지만 왜 웃긴 지 난감해 하는 표정.
‘이래서 벼락치기는 금방 탄로가 나는구나.’ 백 기자는 38살 노총각 최동수 선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며 만회에 나섰다. 이번에 최 선수는 진지했다. “백보람 씨, 아니 백 기자님, 빈말이면 안 되는데...”
# “헉! 김인식 감독님이 배일집 선배님의 친구?”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백 기자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내가 배일집하고 친구야. 예전엔 매일 폭탄주 20잔씩 마셨는데 그 친구는 요즘도 그렇게 마셔. 난 2004년에 (뇌경색으로) 몸 다쳐서 술 끊었지. 허허” ‘감독님, 대선배님 친구분이라 더 떨려요.’
# ‘나도 몸 좀 풀어볼까’
외야 펜스 쪽에 한화 선수들이 모여 ‘게 걸음’을 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투수들이 하체 단련을 위해 고탄력 고무줄을 이용해 스트레칭을 하는 중이었다. 백 기자는 ‘무한걸스’답게 빨간 바지 하단에 밴드를 고정시키고 다리를 벌려봤다. “윽, 취재나 열심히 해야겠다.”
# ‘금강산도 식후경’
배꼽시계에서 알람이 울린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때마침 LG 홍보 관계자가 구장 내 식당으로 안내했다. 따가운 봄볕에 인상을 쓰며 취재하던 백 기자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와, 꿀맛이네요. 제가 선수들보다 많이 먹는 건 아니죠?”
# 이제 기사 좀 써볼까
기자실에 앉아 경기 기록이 빼곡히 담긴 자료를 봤다. ‘어제 LG가 이겼고 오늘도 이기면 순위가 바뀌겠네.’ 이날 경기는 한화가 홈팀 LG를 8-2로 꺾었다. LG는 졌지만 인터뷰했던 최동수 선수 혼자 2타점을 올렸다. ‘아까 소개팅 해준다는 말이 힘이 됐나.’
# “부장, 기사 송고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백 기자는 암호 같은 기록지를 아리송한 표정으로 받아봤다. 다행히 스포츠부 김영준 기자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데스크에게 보고하는 것은 백 기자의 몫. “부장님, 아니 부장! 기사 올렸습니다!”
# “휴~ 이제 다 끝났네. 아이구 어깨야
경기 상황 보랴, 암호표처럼 난해한 기록표 보랴, 노트북 컴퓨터로 기사 치랴... 초보 기자 백보람은 기자실에서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기사를 송고한 후 느끼는 개운한 기분은 기자일의 남다른 보람.
“하루만 해도 정신없는데, 어떻게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해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백보람. ‘개그우먼이 더 쉬운 것 같아요.’
# “편집 과정도 보고 갈래요”
백 기자는 기사를 송고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신이 쓴 기사가 어떻게 신문에 실리는 지 직접 보기 위해서다. 편집 기자가 기사의 분량과 면 배치 등을 설명해줬다. “기사 쓴다고 끝이 아니었구나.”
# 에필로그
이날 백보람은 경기장을 거의 휘젓다시피 했다. 실제 야구기자처럼 양팀 감독 인터뷰, 주요 선수 컨디션을 체크했다. 기자들이 잘 찾지 않는 외야 펜스쪽까지 가서 스트레칭 ‘체험’도 했다. ‘빨간 바지’ 백보람의 ‘순찰 취재’에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은 들뜬 표정이었다.
특히 최동수 선수를 인터뷰할 때 힐끔대던 LG 정의윤 선수는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 관계상 담지 못했다. 그는 ‘무한걸스’ 팬이라면서 6살 위인 백보람에게 ‘누나’가 아닌 ‘이모’라고 불러 당황스럽게 했다(그래서 뺀 것은 절대 아니다^^;). 롱 토스로 몸을 풀던 한화 류현진은 코칭스태프에게 핀잔을 들었다. “현진아, 너 미인 옆에 있다고 공이 똑바로 안 간다!”
백보람은 사실 시구까지 탐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시구를 한 전례가 없어 성사되지 못했다. “저도 홍드로(홍수아가 멋진 시구로 남성팬들에게 얻은 별명)처럼 던질 수 있어요.”
정리=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